신원이 이탈리아 럭셔리 가방 브랜드 ‘로메오 산타마리아’ 인수를 계기로 글로벌 명품사업에 본격 나섰다.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재기에 성공한 이 회사가 이번엔 세계를 무대로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신원은 지난해 초부터 유럽 지역의 브랜드 인수를 추진해 왔다. 유럽의 경제위기가 장기화되면서 오랜 전통의 명품 브랜드들이 여럿 매물로 나왔고, 이 중 1차로 이 브랜드를 인수한 것이다. 로메오 산타마리아는 최고급 피혁 가방 브랜드로 악어백은 1700만~3000만원대, 타조백은 600만~1000만원대다. 이은석 신원 홍보팀장은 “이 브랜드는 이탈리아 현지에선 ‘콜롬보’보다 유명하다”며 “앞으로도 다양한 해외 명품 브랜드를 인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번 인수가격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100억원 안팎인 것으로 알려졌다.

◆재기 성공한 신원, 공격 앞으로

신원이 이탈리아 현지법인 ‘S.A.밀라노’를 세운 것은 단지 로메오 산타마리아 인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향후 글로벌 명품 사업의 전진기지로 삼기 위한 전략이다. 신원은 지난해 론칭한 고급 남성복 브랜드 ‘반하트 옴므’를 명품 반열에 올리기 위해 이탈리아의 알바자 리노를 디자이너로 영입했다. 2009년부터 이탈리아 고급 남성복 브랜드 ‘브리오니’를 국내에 팔기 시작했다. 작년엔 미국 프리미엄진 브랜드 ‘씨위’의 국내 독점 판권을 획득한 데 이어 지난달엔 중국 독점판권까지 따냈다. 모두 명품 사업을 제대로 벌이기 위한 행보다.

이번 인수의 배경에는 박성철 신원 회장(72·사진)의 공격 경영이 깔려있다. 1970년 의류 하청공장으로 스웨터를 만들기 시작한 그는 1973년 직물 편직기 7대와 직원 13명으로 신원을 세웠다. 베스티벨리, 씨 등 만드는 여성복 브랜드마다 승승장구해 1997년엔 계열사 16개, 해외 계열사 8개 등에서 연간 총매출 2조원을 올릴 정도로 성장했다. 그러나 당시 재계 순위 31위였던 신원은 외환위기를 맞아 1억5000만달러가 넘는 외화부채를 안고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갔다. 부도설이 나돌았지만 박 회장은 자신의 지분을 모두 내놓고, 패션을 제외한 모든 자산을 처분했다. 2500명이던 직원도 700명으로 줄였다.

뼈아픈 구조조정을 거쳐 신원은 2003년 워크아웃을 졸업했다. 모두가 ‘조기졸업’이라고 축하했지만 박 회장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2005년 개성공단 1공장을 시작으로 2007년엔 2, 3공장을 준공했다. 저렴한 인건비와 꼼꼼한 기술력 덕분에 해외 수출도 늘어났고 20~30대 여성을 타깃으로 한 베스티벨리, 씨, 비키를 안정화시켰다. 제조·직매형 의류(SPA) 브랜드 ‘이사베이 드 파리’도 내놨다.

지난해 신원의 매출은 5357억원. 예전에 없앴던 중저가 구두 브랜드 ‘세스띠’를 재론칭하고, 직원도 2300명으로 늘리는 등 과거의 규모를 회복하고 있다.

◆토종 패션에서 글로벌 명품으로

박 회장의 이런 공격 행보에는 명품창출포럼의 초대 회장을 맡은 것이 큰 원동력으로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이 포럼은 지식경제부 기술표준원이 주관해 기업 대표와 패션 전문가들이 모여 지난 2월 출범했다. 이번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인수를 계기로 해외 브랜드의 기획·제작·유통·마케팅 등 모든 분야의 노하우를 배우겠다는 박 회장의 의지가 담겨 있다고 회사 관계자는 전했다.

신원은 앞으로 S.A.밀라노를 통해 유럽과 미국, 일본,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기존 수출국에 제품을 판매할 계획이다. 내년 상반기엔 신원이 S.A.밀라노로부터 제품을 수입, 독점판권을 통해 중국에 판매하고 하반기엔 국내에도 선보일 계획이다.

박 회장은 “이탈리아에서 최고로 평가받는 디자인과 숙련된 장인에 의한 수작업에서 나오는 최상의 품질 등을 고려해 로메오 산타마리아를 인수했다”며 “신원 창립 이후 첫 인수합병인 로메오 산타마리아 인수를 계기로 세계 명품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해 글로벌 패션·유통 기업으로 성장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

신원 주요연혁

1973년 창립
1997년 재계서열 31위, 워크아웃 개시
2003년 워크아웃 졸업
2005년 개성공단 입주
2011년 구두시장 진출
2012년 ‘로메오 산타마리아’ 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