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여름 휴가철 유럽항공권 구하기는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다. 그만큼 여름휴가를 유럽에서 보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여행 방식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눈에 띄는 변화 중 하나는 미술, 음악 중심의 예술 투어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점이다.

바캉스를 앞두고 유럽 언론들이 앞다퉈 내놓고 있는 추천 전시회 리스트는 그런 여행자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정보가 아닐 수 없다. 프랑스 유력 일간지 피가로는 이번 여름 ‘놓치지 말아야 할 5개 전시회’와 ‘전시회로 둘러보는 프랑스 투어’를 선정했고, 아트 매거진 ‘보자르’는 국내외 볼 만한 전시 100개를 수록한 가이드북을 별책 부록으로 내놨다. 그중 한국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은 여행지를 중심으로 눈에 띄는 특별전을 소개한다.

○런던-오늘에 되새기는 르네상스 거장 티치아노

목적지를 런던으로 잡은 여행객은 26일 개막하는 런던올림픽 문화예술축제와 관련된 풍성한 볼거리를 만끽할 수 있다. 내셔널 갤러리에서는 ‘변신 이야기:티치아노 2012’ 전이 11일부터 9월23일까지 열린다. 르네상스의 거장 티치아노가 신화의 보고인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를 토대로 그린 세 점의 명화를 크리스 오필리 등 3명의 현대 화가들이 재해석, 발레무대 세트와 발레복을 만들어 전시하고 로열발레단은 이를 활용, 7월16일 3편의 발레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복합 프로젝트다. 이 공연은 대형 스크린을 통해 트라팔가 광장 등 모두 18곳에서 동시에 공개된다. 대영박물관의 ‘셰익스피어:세상을 무대에 올리다’ 전(7월19일~11월25일)과 서펜틴 갤러리의 오노 요코 전(9월9일까지)도 주목할 만하다.

○파리-게르하르트 리히터, 회화의 고정관념을 깨다

퐁피두센터에서는 올해로 80세를 맞은 현대회화의 거장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회고전이 9월24일까지 열린다. 회화와 사진, 단색화와 채색화, 추상과 구상의 경계를 넘나듦으로써 회화의 영역을 확장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작가의 대표작 150여점이 대거 선보인다. 어느 장르에도 속하지 않는 놀라운 그림들을 보며 짜릿한 전율을 맛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몽펠리에-짝퉁 화가들을 통해 확인하는 카라바조의 영향

지중해 인근 대학도시이자 문화도시인 몽펠리에의 파브르 미술관에서는 최근 7억유로 상당으로 평가받는 데생과 유화 100여점이 발견돼 화제를 뿌리고 있는 바로크 회화의 거장 카라바조의 전시가 10월14일까지 열린다. 대표작을 리베라, 발랑탱 드 불로뉴 등 추종자들의 작품과 함께 전시, 카라바조의 영향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끔 했다. 툴루즈의 오귀스탱 미술관과 연계해서 전시한다.

○바젤-젊은 시절의 르누아르를 만나다

아트페어의 도시 스위스 바젤에서는 젊은 시절의 르누아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보기 드문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쿤스트뮤지움에서 8월12일까지 열리는 ‘르누아르:보헤미안과 부르주아 사이에서’ 전이 그것. 부드러운 붓의 터치와 밝은 색채로 인생의 환희를 표현한 르누아르가 젊은 시절 보들레르에 심취, 보헤미안적 삶을 살며 그린 작품 50여점이 선보인다.

○뒤셀도르프-엘그레코, 현대미술의 멘토가 되다

뒤셀도르프의 쿤스트플라스트 박물관에서는 매너리즘의 대표작가인 엘그레코가 현대미술에 끼친 영향을 조명하는 대규모 전시회가 8월12일까지 열린다. 18, 19세기에 완전히 잊혀졌다가 1900년 전후 재발견된 엘그레코의 작품과 20세기 아방가르드 미술과의 긴밀한 관계를 세잔, 들로네, 피카소의 작품과 함께 비교 분석한다.

○베를린-안토니 맥콜의 눈으로만 보는 조각

베를린에서는 빛의 마술사 안토니 맥콜을 만날 수 있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처럼 기차역을 개조해서 만든 함부르거 반호프 미술관의 어둠침침한 공간을 작가는 환상적인 빛의 무대로 개조한다. ‘진정한 조각의 5분’이라는 제목의 이 전시회는 눈에는 보이지만 실체는 없는 독특한 빛 조각이 관람객을 사로잡는다. 전시는 8월12일까지 열린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