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정부가 집중적으로 녹색산업을 키우며 시중은행들에 독려했던 녹색금융이 ‘계륵’으로 전락했다. 공급 과잉으로 일부 태양광업체들이 부도를 내자 은행의 녹색대출 회수에 비상이 걸렸다.

8일 금융계에 따르면 국민 우리 하나 등 시중은행의 녹색금융 관련 상품 취급액이 올 들어 줄고 있다. 국민은행의 ‘KB그린그로스론’ 잔액은 2010년 말 8215억원에서 작년 말 1조3798억원으로 늘었다가 올해 1조3539억원으로 감소했다. 우리은행의 녹색 관련 대표상품인 ‘그린솔라론’ 잔액은 2010년 말 743억원에서 작년 말 733억원, 지난 4일 656억원으로 줄었다. 하나은행의 ‘솔라론(옛 태양광발전시설대출)’ 상품도 대출 잔액이 2010년 말 1779억원에서 지난달 말 1660억원으로 감소했다.

2009~2010년까지만 해도 녹색금융에 대한 금융회사들의 기대는 상당히 높았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부의 지원 독려도 있었지만 신흥시장 개척이라고 생각해 각 금융사들이 경쟁적으로 상품을 내놨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녹색’의 대표주자로 꼽혔던 태양광산업이 유럽 재정위기 여파로 급속히 위축됐다. 네오세미테크 OCI 신성솔라에너지 한화솔라원 등 국내 관련업체들도 부도를 내거나 실적이 급격히 나빠졌다. 수출입은행은 2014년까지 현재 태양광기업 중 75%가 정리되는 구조조정기를 거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은행들은 2000년대 초 ‘닷컴버블’처럼 ‘녹색버블’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은행 관계자들은 “녹색금융엔 대규모 장치산업이 많아서 돈이 많이 들고 리스크도 높다”며 “특히 모듈업체들이 부도가 많이 나다보니 은행 입장에선 관련 업종에 신규대출을 해주기가 다소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민간이 대출·투자를 꺼리면서 녹색금융은 점점 더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기업은행 정책금융공사 등 금융공기업의 몫이 되고 있다. 전체 녹색대출 중 민간은행 비중은 2009년 말 43.6%, 2010년 말 35.4%, 작년 말 29.7%로 낮아졌다.

새롭게 투자하거나 지원할 녹색분야 유망기업이 나타나지 않자 정부 및 정책금융기관의 실적도 변변치 않다. 지식경제부가 2009년 1조원을 조성한 신성장동력펀드는 이제까지 3263억원어치만 집행됐다.

산업은행의 신성장동력 그린퓨처펀드도 2009년 1000억원 규모로 만들어졌지만 최근까지 실제 투자는 100억원(집행률 10%)밖에 이뤄지지 않았다.

정귀수 하나금융연구소 연구위원은 “녹색분야 투자 대상이 계속 줄어들어 리스크가 작은 대기업이나 실적이 양호한 발광다이오드(LED) 쪽에만 집중이 지원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