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통의 시대’라고들 말한다. 다른 의견에 귀를 막는 소통 부재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쪽에서는 남의 얘기를 듣기 위해 시간과 비용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자발적으로 찾아다니며 몇 시간씩 줄을 서는 것은 물론 무료 강연이 암거래되는 기현상도 벌어진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강연 열풍의 단면이다. 전문가들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세대에서 시작해 강연을 즐기는 연령대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 돈도 따르게 마련이다. 강연 붐은 비즈니스 기회로 이어진다. 문화 콘텐츠로 떠오른 강연 열풍이 마케팅 코드로 번지는 모습이다.

지난 6월 1일, 연세대 노천극장에 1만5000여 명이 모였다. 수용 인원인 1만 명을 훌쩍 넘겨 빽빽한 모습이었다. 그들이 주목한 이는 아이돌 스타가 아니라 ‘정의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다. 무료 강연임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에서는 암표가 거래됐고 현장은 토론 열기로 가득했다.

그에 앞선 5월 30일, 한양대에서 열린 애플의 공동 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의 ‘IT 콘서트’ 현장에도 사람들로 북적였다. 사전 등록은 신청자 폭주로 하루 만에 마감됐고 강연 당일 아침 일찍부터 긴 행렬이 늘어섰다. 대학생을 비롯한 20대가 대부분이었다.

지금 대한민국엔 ‘강연 열풍’이 불고 있다. 강연의 형태나 내용은 달라도 공통점은 뭇 콘서트 못지않은 인기를 얻고 있다는 것이다. 교수·경영인·방송인·예술가 등이 강연자로 나서고 이들을 만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모인다. 2010년부터 시작한 ‘청춘페스티벌’에는 10만 명이 다녀갔고 시즌 때마다 적극 홍보에 나서는 고정 팬이 적지 않다.

지난 2월 ‘원하는 것을 어떻게 얻는가’의 저자인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와튼스쿨 교수의 내한 강연 때는 3만 원 유료 강의가 두 시간 만에 다 팔렸고 지난 5월 처음 선보인 ‘CJ 꿈지기 사절단’ 특강 역시 두 시간 만에 표가 매진돼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삼성그룹의 ‘열정락(樂)서’ 토크 콘서트도 올 들어 지난 5월까지 총 4만5000명이 몰렸다. ‘열정락서’ 홈페이지에는 “어려운 환경에서 도전하고 저지르며 성공을 이뤄낸 사례를 보며 역시 사람은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실감하게 됐다”, “고난을 긍정으로 바꾸는 힘이 나의 열정이다” 등의 후기가 가득하다.

강연의 힘은 ‘공감’에서 나온다. 최근 인기 있는 강연은 일 대 다 방식으로 한 명의 연사가 다수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참여를 끌어내는 데 있다. 마이클 샌델 교수는 1만5000명을 상대로 토론을 제안했고 청중의 호응과 반응을 이끌었다.

중간 중간 환호성과 박수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관객들은 직간접적으로 강연에 참여하며 공감대를 형성한다. 현실의 답답함을 강연이라는 장을 통해 소통하며 함께 해답을 모색하는 모습이다. 강연 문화 기업 마이크임팩트 한동헌 대표는 “강연이 새로운 문화 콘텐츠로 떠올랐고 앞으로 지식 생태계의 핵심 유통 경로가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강연이 주목받게 된 데는 TED의 인기도 한몫했다. TED는 미국의 비영리 재단으로 기술·엔터테인먼트·디자인·심리학·철학·과학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의 18분 강연을 동영상으로 무료 배포해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 하고 있다. 2009년 무렵 한글 번역되면서 최근 2~3년 사이 국내 지식인 사이에서 널리 알려졌다. 혁신을 요구하는 시대에 영감을 얻기 위해 사람들은 강연을 찾았다. 지식경제부 등 정부 기관에서도 ‘테크플러스’, ‘지식플랜드’ 등 한국형 TED의 운영 주체로 나서며 확산에 앞장섰다.

강연·공연·토크쇼 등이 결합된 ‘강연 콘서트’ 형식도 흥행 대박 요소 중 하나로 꼽힌다. 2009년 ‘신개념 강연 콘서트’라는 이름으로 등장해 강연자가 노래를 부르거나 가수가 얘기를 했다. 한 무대에 여러 명의 전문가가 나오기도 하고 사회자와 대화를 나누는 등 강연을 한 편의 ‘쇼’처럼 만들었다. ‘토크콘서트’, ‘청춘페스티벌’, ‘청춘콘서트’, ‘세상을 바꾸는 1천개의 직업’ 등에서 김제동·박원순·안철수·박경철·이윤석·김국진 등이 연사로 나서 인기를 끌었다.

또한 KBS의 ‘이야기쇼 두드림’과 ‘강연 100°씨’, CBS의 ‘세상을 바꾸는 15분’ 등 TV 프로그램도 강연을 ‘배움의 영역’에서 ‘문화의 영역’으로 이끄는 데 역할을 담당했다.

최근 몇 년간 급속히 번진 강연 열풍 중심에는 ‘SNS 세대’가 자리하고 있다. 초기 강연의 인기는 20대 중심의 SNS 파워 유저가 이끌었다. 강연 후기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전파되고 다시 오프라인 강연의 파워로 이어졌다. 한 대표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젊은 세대가 멘토 부재에 대한 의식을 공유했고 아이로니컬하게도 소셜 미디어 소통이 활발해지면서 대면 소통에 대한 니즈도 커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강연의 힘은 '공감'에서 나온다. 최근 인기 있는 강연은 일 대 다 방식으로 한 명의 연사가 다수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게 아니라 다수의 참여를 끌어내는 데 있다."

강연 비즈니스의 세계

사람이 몰리는 곳에 비즈니스 기회도 있다. 최근에는 기업에서도 대형 강연을 기획해 고객들에게 선보이는 사례가 늘고 있다. 주로 수익보다 사회 공헌이나 마케팅 관점으로 강연에 접근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삼성그룹의 ‘열정락서’다. 지난해부터 총 23회 강연을 열었고 많게는 한 번에 1만 명 이상이 모였다.

삼성그룹의 ‘열정락서’는 기업 CEO가 강연자로 나서 화제를 모았다.

열정락서 관계자는 “멘토링 성격의 사회 공헌 활동을 해보자는 측면에서 진행했고 최대한 회사 홍보를 자제했는데, 기대 이상의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연사가 총 세 명인데, 그중 한 명은 삼성그룹의 최고경영자(CEO)다.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인생 스토리를 펼치며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는 것은 물론 기업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주는 효과까지 있다는 설명이다. 강연이 마케팅 코드로 활용되는 셈이다. 내부 반응도 좋아 올 하반기에는 직원 대상의 열정락서도 열 계획이다.

‘CJ 꿈지기 사절단’은 ‘영화관 강연’으로 오픈 두 시간 만에 표가 매진됐다.

CJ그룹도 올해부터 ‘CJ꿈지기 사절단’ 특강으로 2030세대와 만나고 있다. 대형 강연장이 아닌 CGV영화관에서 강연해 인기를 끌었다. 큰 호응을 이끌어 내며 지난 5월 말 시즌1이 마무리됐는데 앞으로 2차, 3차에 걸쳐 지속적으로 2030세대와 호흡할 계획이다. 이 밖에 현대카드도 ‘슈퍼토크’를 통해 문화·예술·경영 등 전문가가 고객들과 만난다. 지난 6월 12일에는 5번째 슈퍼토크로 뉴욕 공공 공연 예술 도서관 총괄 디렉터 재클린 데이비스. 패션 사진작가 김용호 등 4명이 강연을 펼쳤다. 현대카드 멤버에게만 제공하는 서비스로 일종의 문화 마케팅에 해당한다. 비즈니스 캐주얼 브랜드 마인드브릿지도 6월 27~28일 세계적 석학 슬라보예 지젝을 초청해 인문학 콘서트를 연다.

기업은 수익성이 목적이 아니다. 기업들이 고객을 상대로 대규모 강연에 나서는 것은 직간접적으로 브랜드 가치에 영향을 줘서다. “자본주의 4.0 시대에는 이익 창출뿐만 아니라 사회적 가치도 동시에 창출하는 산업 생태계를 구성하는 게 중요한데, 2030세대의 꿈을 응원하는 강연이 그러한 역할을 담당해 준다”고 임원석 CJ그룹 마케팅 부장은 말했다.

그렇다면 강연 하나가 진행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며 비용은 얼마나 들까. 강연이 오르기 위해선 평균 3~6개월의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 통상 기획·섭외·제작·마케팅·공연·관리순을 거친다. 가장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부분은 섭외비이며 그 다음은 무대 설치비와 대관료, 마케팅비와 운영비가 차지한다.

강연자를 섭외할 때는 지인을 통한 직접 섭외와 전문 에이전시를 통해 하는 방법이 있다. CAA(Creative Artists Agency)· WME(William Morris Endeavo)·워싱턴스피커스뷰로 등 에이전시에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피커들이 대거 포진돼 있는데, 강연자들의 ‘몸값’은 대부분 정해져 있다.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해외 연사에게 강연료와 왕복 항공권, 숙박비 등 국내 체류비 등을 제공해야 한다.

강연료는 적게는 평균 1000만 원에서 많게는 1억 원 이상을 줘야 한다.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의장,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 에반 윌리엄스 트위터 창업자 등 일부는 2억~3억 원대를 호가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와튼스쿨 교수 등 석학들은 3000만 원 선에서 형성된다. 같은 연사라고 하더라도 책 홍보 차 방한할 때는 무료로 진행되기도 한다.

강연 사이 사이 사회자와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초청 가수의 공연을 선보이는 등 완급 조절을 하는게 강연 콘서트의 특징이다.

[폭발하는 강연 비즈니스] '소통' 아이콘으로 떠올라…강연 생태계 '구축 중'
국내 강연자는 섭외료가 150만 원에서 1000만 원 이상으로 나뉜다. 명강사나 베스트셀러 작가 및 명사, 특급 명사 등에 따라 150만, 300만, 500만, 700만, 1000만 원 이상으로 구분되며 평균 200만~300만 원 선에서 결정된다. 섭외료가 가장 비싼 직업은 연예인으로, 일반 ‘행사비’와 비슷한 수준으로 알려진다. 섭외 1순위는 섭외료가 비싼 이보다 발레리나 강수진, 소프라노 조수미, 봉준호 감독, 김난도 서울대 교수 등과 같이 영향력을 주는 인물이면서 강연에 잘 나서지 않는 이들다. 강연의 취지와 콘셉트에 잘 맞으면서 양질의 콘텐츠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 섭외 대상 1순위다. 물론 유명세도 중요하다.

강연의 트렌드는 계속 진화하고 있다. 꿈·청춘·열정과 같이 동기부여하는 주제가 대부분이었다면 갈수록 세분화되는 추세다. 20대 대학 신입생을 위한 강연, 사회 초년생을 위한 강연, 30대 여성을 위한 강연, 은퇴 설계자를 위한 강연 등으로 주 타깃 층도 대학생에서 전 세대로 점차 확대되는 모습이다. 하지만 인문학, 창의력, 미래 트렌드 등은 변함없이 인기 주제다.
또한 공연과 강연의 결합을 넘어 다양한 카테고리와의 결합이 곧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올 하반기 한 금융회사에서는 여행을 접목해 해외에 있는 글로벌 코리안을 만나는 강연을 시작할 계획이다. 한 대기업 재단은 강연과 전시 등을 결합한 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현재 강연 비즈니스는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한다. 성장기 단계에 접어들어 수요와 공급 모두 늘고 있으며 강연을 기획하거나 대행하는 기획 제작사, 연사 에이전트 및 섭외를 담당하는 강연 에이전시, 무대 설치나 시스템을 담당하는 기획사, 1인 강연자 등이 수를 넓히고 있다. 하지만 모두가 돈을 버는 구조가 아니다. 대규모 강연이 입장료가 무료에 가깝기 때문에 수익은 기업 협찬 및 후원에서 나온다. 하지만 대규모 후원이 이뤄지는 곳이 적기 때문에 지금은 강연 수익은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수준이다. 수익을 내기 위해선 무형 콘텐츠에 대한 인식에 변화가 요구되며 무엇보다 강연의 ‘브랜드화’가 필요하다. 또한 국내 유명 연사를 더욱 발굴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해외 연사에게 거액을 주다 보니 몸값이 내리지 않는다. 오히려 같은 연사라고 하더라도 미국 혹은 유럽에서 하는 것에 비해 한국에 올 때 더 많은 강연료를 요구하는 편이다. 맞춤형 콘퍼런스 기획사 새턴 커뮤니케이션의 문기환 대표는 “해외 대표 에이전시에 등록된 한국 사람은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를 비롯해 5명 이내다. 아시아나 중동 아프리카 등에서는 오히려 우리를 부르고 싶어 한다. 영어를 잘 구사하고 좋은 콘텐츠를 갖춰 해외로 역수출하면 국가 이미지도 상승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