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원유수출 40% 급감"…중동 정세 '안갯속'
한국, 내달 1일부터 수입 중단…피해 불가피

다음 달 1일 유럽연합(EU)의 원유 금수를 비롯한 추가 제재 발효를 앞두고 이란의 석유 수출에 벌써 경고등이 들어왔다.

특히 EU의 추가 제재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이란에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론이 다시 제기되는 등 중동 정세가 안갯속으로 빠져드는 형국이다.

한국 정부 역시 다음 달 1일부터 이란산 원유 수입을 중단키로 해 국내 정유·해운 업계와 이란 수출업체에 어느 정도 피해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란 상반기 원유수출 40% 급감" =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6일 EU 제재 발효를 앞두고 이란 석유산업의 타격이 벌써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란이 공식적으로는 부인하지만 지난 6개월간 이란의 원유 수출이 40%나 줄어 하루 평균 150만 배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하루 평균 250만 배럴 정도였던 이란의 원유 수출량이 외부의 제재로 이미 120만∼180만 배럴 수준으로 줄었다는 미국의 최근 추산과 엇비슷한 수준이다.

또 한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들이 이란산 원유의 금융거래를 제한하는 미국의 국방수권법(28일 발효)의 예외를 인정받았지만, 원유 수입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EU의 추가 제재에는 유럽의 보험사와 재보험사들이 이란산 석유 수송 선박에 대한 보험을 취급할 수 없도록 하는 등의 금융 제재도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원유를 운송하려면 화물·선박 보험과 선주상호(사고배상책임) 보험(P&I)이 필수다.

그러나 국내 보험사들은 화물·선박 보험은 70∼90%, P&I는 100% 유럽 보험사나 재보험사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한국 정부가 이날 이란산 원유 국내 도입이 다음 달 1일부터 중단된다고 밝힌 것도 이런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호르무즈 봉쇄론 `고개'…핵협상 난관 경고 = EU의 원유 금수가 현실화하면서 올 초 이란이 위협하던 호르무즈 해협 봉쇄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이란의 한 육군 장성은 이란의 국익 수호를 위해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비롯한 모든 수단을 강구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반관영 ISNA 뉴스통신이 지난 25일 전했다.

이란은 또 이날 외무부 대변인 정례브리핑에서 EU의 추가 제재가 핵협상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란이 실제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현재로서는 지배적인 분석이다.

세계 원유 운송의 17%를 차지하는 호르무즈 해협에는 서방은 물론 걸프 지역 산유국들의 사활적 이해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이란이 실제 해협을 봉쇄한다면 스스로 고립을 심화하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

또 페르시아만 원유 수송로의 안전을 최우선적인 국익의 하나로 고려하는 미국이 군사적 보복 조치에 나서 전면적인 전쟁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크다.

이는 이란은 물론 미국을 비롯한 서방으로서도 가능한 한 피해야 할 시나리오다.

이에 따라 이란과 서방이 당분간 `기싸움'을 지속하면서도 갈등 관리와 핵 문제 해법 도출을 위한 노력을 병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국내 정유·해운업계 타격…수출업체 피해도 불가피 = 이란산 원유 수입 중단은 국내 해운 업계는 물론 정유 업계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전망이다.

다만 에너지 공급 등에는 유가 변동에 따른 피해만 우려될 뿐 대체 수입선 확보 등으로 큰 차질이 없을 것이라는 게 정부 당국자들의 설명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원유 수입량은 하루 평균 250만 배럴로 이 가운데 이란산은 10%에 조금 못 미치는 하루 평균 24만 배럴 수준이다.

따라서 이란산 원유 도입이 중단되면 하루 평균 24만 배럴의 원유가 부족해지는 셈이다.

그러나 정부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등을 통해 이미 부족한 원유 도입분을 상당 수준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한 소식통은 "우리나라 전체 원유 수입량의 45%가 재수출용"이라면서 " 대체 루트를 통해 최소한 재수출용을 제외한 원유의 부족분은 확보했다"고 말했다.

최악의 경우를 가정하면 이란산 원유 수입량 가운데 재수출용에 해당하는, 하루 평균 최대 12만 배럴의 원유 부족을 국내 정유업계가 감당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나 더욱 우려스러운 부분은 이란산 원유 수입 중단으로 국내 수출기업이 받을 타격이다.

이란에 수출하는 국내 기업은 우리은행·기업은행의 원화계좌를 이용해 국내 정유사가 이란에 지급하는 원유 수입대금과 맞바꾸는 형태로 수출 대금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현재 대이란 수출 기업 2천900여 곳 가운데 중소기업이 90% 이상이어서 중소기업의 피해가 우려된다.

이에 정부는 중소 수출기업의 갑작스런 수출 중단을 막고 교역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무역협회 주관으로 민간 차원의 수출자율관리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이 소식통은 "현재 원화계좌에 남아 있는 잔고는 57억 달러 정도로 올 하반기까지는 수출 대금 수령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면서도 "올해 안에 이란산 원유 수입이 재개되지 않는다면 잔고 부족으로 수출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두바이연합뉴스) 유현민 특파원 hyunmin623@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