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TV에 방영되고 있는 주말드라마 ‘닥터진’은 현대를 살고 있는 천재의사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조선 철종시대로 가서 겪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인공 ‘진혁’은 매독에 걸린 기녀를 치료하기 위해 페니실린을 만들다가 잠시 멈춰 선다. 역사가 뒤바뀔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상용화된 페니실린을 비롯한 수많은 신약들은 인류의 삶과 역사를 획기적으로 바꿔놓았다.

세계 의약품 시장 규모는 2011년 700조원 이상으로 추산되고 있다. 시장규모가 클 뿐만 아니라 연평균 7~8%의 지속성장을 하고 있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전 세계적인 고령화, 지구온난화, 그리고 환경오염으로 노인성 질환, 난치성질환 및 다양한 전염병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선진국을 중심으로 신약개발 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 신약개발은 화학, 약학, 의학, 생물, 수학, 정보기술(IT) 등 기초학문과 응용기술이 집약된 첨단 과학기술이다. 또한 다양한 분야가 연계된 노동집약적인 특성으로 인해 고학력인력의 일자리창출 효과도 크다. 결국 경제력과 과학기술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국가에서는 감히 엄두를 낼 수 없는 선진국형 산업인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아직 신약개발에서 갈 길이 멀다. 2011년 국내 처방의약품 상위 10개 품목 중 국내제품은 2개에 불과하다. 대부분 국민들이 거대 다국적 제약사가 개발한 약을 복용하고 있는 것이다. 2011년 세계 100대 제약사에 일본 제약사가 23개가 포함된 반면 우리나라는 2개에 불과하다. 더 큰 문제는 세계적인 선진제약사들이 매출액의 15~20%가량을 연구·개발(R&D)에 투자하는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5~8%대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실제 신약 R&D 투입은 5% 이하로 추정된다. 국가적 차원의 신약개발을 위한 대책이 시급한 이유다.

최근 국내 제약사는 약가인하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환경변화로 신약개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국내에서 신약 R&D의 주체인 대학, 연구소, 병원 및 제약산업체 등은 연구비, 인력, 인프라 및 경험에 있어서 미국, 유럽의 선진제약사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답은 ‘뭉쳐야 산다’는 것이다. 산·학·연과 정부가 함께 신약개발 전략을 명확하게 다듬고 철저한 역할분담을 통해 대한민국 신약개발 국가플랫폼을 구축해야만 한다.

인류가 생존하는 한 피할 수 없는 숙명인 신약개발을 국가 신성장동력으로 국민들에게 인식시키는 것도 시급하다. 전자, 자동차, 조선산업 등 기존 국가주력산업의 성장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이고 씨앗이기 때문이다. 신약개발은 우리나라가 복지국가로 성장하고 저개발국에 대한 실질적인 원조도 가능하게 하는 ‘착한 산업’이다. 다국적 제약사들이 선진국 시장에 집중하는 사이에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 저개발국에서 발생하는 말라리아, 기생충, 뎅기열 같은 질병에 대한 치료제 개발은 소외되고 있다. 백범 김구 선생은 문화강국론을 펼치면서 인류에게 부족한 것이 인의와 자비, 사랑이라고 했다. 지구촌 곳곳에서 소외질병으로 고통받는 이웃들의 마음을 인의와 사랑이 담긴 우리의 신약으로 보듬어야만 한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이고 세계인의 존경을 받는 진정한 선진국으로 도약해야 할 것이다.

신약개발은 천문학적인 비용이 장기간 투자되고 실패 위험도 매우 크다. 그러나 국민건강에 대한 주권을 확보하고 모든 인류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다행히 산·학·연이 힘겹게 쌓아온 신약개발 역량은 최근 세계적 수준에 다가가고 있다. 국내 제약사의 해외수출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제는 각자도생이 아니라 산·학·연에 분산된 역량을 한데 모으는 국가적 네트워크를 강화해야 한다. 조선 철종시대에 우리 손으로 페니실린을 만들었다면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 했다. 글로벌 혁신신약 개발로 국익창출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재현 < 한국화학연구원장 kjaehyun@krict.re.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