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아테네의 대표적인 부촌 키피시아. 신민주당 당사가 자리잡고 있는 이곳은 17일 밤 10시(현지시간)부터 축제 분위기였다. 2차 총선거에서 신민주당이 승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손에 와인 잔을 든 40여명의 당료와 지지자들이 몰려들었다. 이후 당사에는 수백명이 모여들어 자축연이 벌어졌다.

신타그마광장에 마련된 신민주당의 임시 부스도 각국 취재진과 지지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오후 7시 출구조사 시점엔 수십여명에 불과했던 사람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1000명 가까이 불어나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였다. 광장을 찾은 관광객이 신민당 부스를 기웃거리는 모습도 보였다.

중간개표 결과 신민주당의 승리가 확정되자 알렉시스 치프라스 시리자(급진좌파연합) 대표는 “우리가 졌다”며 패배를 시인했다. 신민주당 부스에서 만난 호텔 종사자 콘스탄티나 콜리오풀루(29)는 “파국을 면하긴 했지만 아무것도 달라진 건 없다”며 앞일을 걱정했다.

현지에 진출해 있는 한국법인 관계자는 “많은 그리스 기업이 시리자가 승리하고, 기업에 대한 세금이 많아지면 해외로 나가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선박, 태양광 등 그리스 대부분의 기업이 투자를 총선 이후로 미뤄 놓았다”며 “이번에 신민주당이 승리한 만큼 기업 환경은 크게 나빠지진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리스 사람들은 관련 규정에 따라 본적지에서 투표를 해야 한다. 대부분이 18일까지 3일간의 휴가를 내고 고향에 와 있다.

윤강덕 KOTRA 아테네 비즈니스센터장은 “외국인 자녀들이 다니는 국제학교는 대부분 18일까지 휴교”라며 “관광객이 가장 많이 다니는 파르테논신전까지 일요일에 문을 하루 종일 닫았을 정도”라고 지적했다.

시리자 지지자들의 안타까운 목소리도 들렸다. 시리자를 지지했다는 바실리스 코코니스(31)는 “신민주당 정치인들은 실업자가 많이 몰려 있는 옴모니아 근처엔 찾아오지도 않는다”며 “우리의 처참한 상황을 아는 그리스 정치인은 없다”고 말했다. 신민주당이 실업자와 소통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18일 오전, 에게해의 태양은 아무일 없었다는 듯 무심히 빛을 내뿜었다. 옴모니아광장 옆에는 오랜 불황으로 텅빈 건물이 자리잡고 있었고, 그 앞 그늘에는 여전히 실업자로 가득했다. 간혹 소말리아 등에서 넘어온 불법 체류자들도 보였다.

관광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신타그마광장엔 ‘캘빈클라인’ 상표가 보이는 속옷을 입고 동냥을 하는 젊은 그리스 청년도 많았다. 그들은 마약에 절어 있었고, 미래에 대한 희망은 없는 듯 두 눈은 반쯤 감겨 있었다. 이들의 미래를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신민주당을 비롯해 그리스 정치인들이 감당해야 할 짐은 마냥 무거워 보였다.

아테네=박동휘 기자 donghui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