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코리아(Buy Korea) 펀드’라는 게 있었다. 말 그대로 ‘한국을 사자’는 펀드였다. 첫 선을 보인 건 1999년 3월. 종합주가지수(현 코스피지수)가 500을 맴돌던 시절이었다. 바이코리아펀드는 나오자마자 돌풍을 일으켰다. 3개월 만에 12조원을 끌어모았다. 이 돈이 증시에 투입되면서 그해 7월 종합주가지수는 꿈의 1000을 돌파했다. 바이코리아펀드도 그해 77%의 수익률을 냈다.

끝은 허무했다. 이듬해인 2000년 대우그룹 사태와 함께 정보기술(IT) 거품이 꺼지면서 주가가 반토막났다. 펀드의 수익률도 급전직하했다.

열광 뒤엔 반쪽짜리 성공…

김신 현대증권 사장은 창립 50주년을 맞아 바이코리아펀드를 ‘반쪽짜리 성공’이라고 평가했다. 마케팅에선 성공을 거뒀으나 리스크 관리에서 실패했다는 분석이다.

후임 사장으로부터 반쪽짜리 성공이라는 평가를 받은 주인공은 이익치 당시 현대증권 회장이다. 현대건설 출신으로 증시 문외한이던 그는 외환위기로 모두가 지쳐있던 1999년 “한국 경제는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기치를 높이 들었다. 투자설명회에 직접 참석해 “저평가된 한국 기업 주식을 사자”고 강조했다. “종합주가지수가 2000년 1700, 2002년 2000, 2005년 6000까지 오를 것”이라는 그의 호언장담에 투자자들은 발을 구르며 열광했다. “마치 신흥종교 교주같았다”는 게 당시 측근 인사의 기억이다. 그 자신도 컴퓨터의 정확성과 불도저의 저돌성을 합쳐놓았다는 뜻의 ‘컴도저’란 별명을 얻었다.

‘이익치 신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그 자신이 주가조작사건에 연루돼 기소되면서 불도저의 힘은 뚝 떨어졌다. 펀드는 유명무실화됐고, 그는 ‘무식함과 무모함의 대명사’가 됐다.

당시 많은 전문가들의 우려대로 이익치 신화의 붕괴는 예고돼 있었다. 돈으로 끌어올려진 주가는 달리는 자전거와 같다. 계속해서 돈이 공급되지 않으면 넘어져버린다. 서로 먼저 내리려다보면 자전거조차 부서지고 만다. 바이코리아펀드가 그랬다. 2007년 나온 인사이트펀드도 그랬고, 작년 돌풍을 일으킨 자문형랩도 비슷한 궤적을 그렸다.

평론가만 가득한 증시

이런 학습효과 때문일까. 작년 하반기부터 지리멸렬한 장세가 계속되고 있지만 “나를 따르라”고 외치는 전문가는 찾아볼 수 없다. “주가가 더 빠질 것이니 팔아라”든가, “공포가 엄습할 때가 바로 살 기회”라는 등의 기본적인 주장조차 들리지 않는다. 내로라하는 펀드매니저나 애널리스트들은 “유럽이 어쩌니, 미국이 어쩌니”하면서 눈치보기와 사후평론에 급급하다.

최고경영자(CEO)들도 마찬가지다. 나빠진 수익성에 한숨을 내쉬며 정부의 규제만 탓하고 있다. “바로 이거다”고 나서는 CEO는 없다. 새로 선임된 CEO들이 품질경영이니 정도경영이니 외치고 있지만, 진이 다 빠져 증시를 등지는 개인투자자들에겐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말로 들릴 뿐이다.

그동안 투자환경이 변했다. 투자자들의 주식투자에 대한 눈높이도 낮아졌다. 일확천금보다는, 안정적인 수익을 원하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 더욱이 최근 증시 조정은 우리 내부의 문제가 아닌, 유럽 등 외생변수에 의해 파생됐다. 이런 상황에서 이익치 같은 사람이 나올 경우 돈키호테쯤으로 취급받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지리멸렬한 장세를 통렬하게 꿰뚫을 만한, 확신을 갖고 투자자에게 새로운 활력을 제공할 만한 사람을 기다리는 게 최근의 증시 분위기다. 차라리 이익치가 그립다.

하영춘 증권부장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