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사랑받는 기업의 조건
#현대오일뱅크 대산공장에서 가장 좋은 건물을 쓰는 사람은 공장 보수·정비를 위해 상주하고 있는 협력업체 직원들이다. ‘한마음관’으로 이름 붙여진 협력사 전용관에는 골프장 수준의 샤워장과 개인 로커, 카페풍의 식당과 야외 테라스 등이 마련돼 있다. 권오갑 사장의 ‘특명’에 따라 30억원을 들여 지난 3월 완공했다. 이 건물을 짓기 전까지 협력사 직원들은 컨테이너 박스가 탈의실이자 휴게실이요, 식당이었다. 늦은 밤까지 온몸에 기름때를 묻혀가며 보일러 작업을 한 뒤에도 그저 손만 씻고, 기름 냄새를 고스란히 안은 채 집에 가야 했다.

#서울 시내 대표적인 먹자골목인 무교동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점 중 하나는 44년째 북엇국 한 가지만 팔고 있는 ‘무교동 북어국집’이다. 70석 남짓한 식당이지만 하루에 많게는 1000명 이상의 손님이 찾는다. 음식이 맛있고, 바쁜 식당의 묘한 공통점 중 하나는? 종업원들의 불친절이다. 그러나 이곳의 매력은 그 ‘악습’마저 떨쳐냈다는 것이다. 음식맛과 더불어 밝은 얼굴로 쉴 새 없이 ‘더 필요한 것 없냐’며 챙겨주는 종업원들의 친절이 단골을 부르고 있다. 그 비결은 식당 2층에 있다. 손님 자리도 부족한 판에 2층 한 층을 냉난방이 잘 되고, 샤워시설까지 갖춘 종업원 휴식 공간으로 쓰고 있다.

‘착한 기업論’ 의 감상주의 경계

한때 짐 콜린스의 ‘위대한 기업’론이 부상했지만, 요즘은 라젠드라 시소디어의 ‘사랑받는 기업’론이 각광받고 있다. 위대한 기업론은 실적과 수익률, 주가 등과 같은 ‘수치’를 기준으로 삼은 데 비해, 사랑받는 기업론은 협력업체와 종업원에 대한 배려, 지역사회에 대한 봉사 등 사회적 ‘가치’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

현대오일뱅크와 ‘무교동 북어국집’의 경영자들은 ‘따뜻한 리더십’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어린 시절 과수원집 아들로 자란 권 사장은 늘 ‘일꾼’들 틈에 섞여 밥을 먹고 부대끼면서 그들의 애환을 피부로 느끼게 됐다고 한다.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입고 다니는 협력사 직원들을 위해 최고급 시설을 마련해 준 것은 ‘일꾼’들에 대한 애정의 표현이다. ‘무교동 북어국집’을 운영하는 진광진·광삼씨 형제의 지론은 ‘종업원이 행복해야 손님도 행복하다’는 것이다.

‘치열한 경영’ 간과해선 안돼

그러나 우리가 ‘사랑받는 기업’을 얘기할 때마다 빠져들기 쉬운 환상이 있다. ‘따뜻하고 착한’ 이미지가 주는 감상주의에 젖어 드는 것이다. 그 이면의 치열한 경영 활동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권 사장은 고도화설비 공사 막판, 현장에 살다시피 하며 공기를 50일 앞당겨 800억원의 비용을 절감했다. 영업·마케팅 시스템의 대대적인 재정비를 통해 정유 시장 점유율도 4%포인트 끌어올려 20% 시대를 열었다. ‘무교동 북어국집’의 진씨 형제가 아무리 바빠도 마다하지 않는 일이 있다.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다. 이 음식점의 오전 시간대 손님 중 70%는 일본 관광객들이다. 진씨 형제는 그들을 보며 수출에 한몫한다는 자부심을 느낀다고 한다.

시소디어 책의 원제는 ‘Firms of Endearment(사랑받는 기업)’다. 셜리 맥클레인과 잭 니콜슨이 나온 1980년대 영화 ‘Terms of Endearment(애정의 조건)’를 연상시키는 제목이다. 한국어판 제목 ‘위대한 기업을 넘어 사랑받는 기업으로’는 ‘사랑받는 기업’의 의미를 잘 나타내는 제목이다. 위대한 기업이 되고 그를 넘어서 사랑받는 기업이 되는 것이지, 위대한 기업에 비켜서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에서다. 적선도 돈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사랑받는 기업의 선결 조건은 위대한 기업이다.

윤성민 산업부 차장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