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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해운(주)(회장 정연통)은 국제복합운송업계에서 탄탄한 입지를 인정받고 있는 글로벌 업체다.

정 회장은 한국해양대를 졸업하고 모교 교수로 10여 년간 재직 후 1978년 천일해운(주)을 설립, 얼마 되지 않아 당시 세계 1위였던 굴지의 독일 기업인 KN사와 합작회사를 설립했다. 이어 일본의 미쓰비시그룹의 물류복합운송회사와도 업무제휴를 하는 등 이미 30년 전부터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회사의 토대를 탄탄히 다지는 작업에 충실했다.

정 회장은 이와 함께 양산에 ‘한국화물터미널’을 설립해 국내 최초의 복합운송터미널로서 양산을 국내 최대 화물운송의 허브가 되는 데 일조했다. 1992년에는 예인선 면허를 취득해 울산에 본인의 호인 해강을 따 명명한 해강선박(주)을 설립했다.

이 예인선 사업은 안정적인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면허 취득이 어렵고 초기자금이 많이 들어가 엄두를 낼 수 있는 분야가 아니었다. 하지만 사업에 대한 정 회장의 자신감과 진취적인 마인드는 이를 뛰어넘어 회사를 안정시키며 나날이 성장해갔다.

호사다마라던가, IMF 외환위기에 시련이 닥쳐 그 기세도 한풀 꺾일 수밖에 없었다. IMF 직전 당시 최대 규모였던 3600마력의 예인선을 500만달러에 빌려 건조한 것이 큰 부담으로 다가온 것.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의 회사가 도산하고 환율이 3배 가까이 치솟던 바로 그 시기에 천일해운(주) 역시 위기를 피해갈 수는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쳐 개인 재산을 모두 처분하는 등 회사를 지켜내기 위한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결국 전 재산을 날렸지만 주변의 많은 도움으로 무사히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정 회장은 “이 사업은 주위의 도움이 필수적인 사업입니다. 제조업처럼 나 혼자만 잘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고 강조하며 스스로를 ‘지게쟁이’라 칭한다. 이러한 그의 경영관은 ‘利客爲業(이객위업)’의 사훈에서도 잘 드러난다. ‘고객을 이롭게 하기 위한 사업을 한다’는 의미다.

그는 국제라이온스협회(354-C지구 총재 역임)와 종친회(영일 종씨 대종회 회장), 향우회(영천향우회 회장), 시도민회(재경대구경북시도민회 회장 역임)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봉사 하는 삶, 주변과 상생하는 삶을 위해 노력한다.

슬하에 1남 4녀를 둔 정 회장은 현재 외아들인 정동형 상무가 대를 잇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정 회장은 앞으로 목표는 해강선박의 예인선을 10척까지 늘리는 것이며 은퇴 후엔 이 배들을 자식들에게 두루 나눠 주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또 국가 해상운송에 기여하는 회사가 되는 것이 최종 목표임을 강조했다.

최규술 기자 kyus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