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철 세계경영연구원 회장 "요즘 젊은이들 너무 포시랍게 커…치열한 고민이 없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한경과 맛있는 만남
내 인생은 도전·좌절·실패 연속…일생 통해 반 6등이 최고 성적
책·신문 읽지 않은 CEO, 회사 제대로 경영하기 어려워
'시장=자유'라는 생각은 큰 오해…시장 본질은 규칙의 합의
"기업 공개하면 주식 30%는 직원들 몫"
내 인생은 도전·좌절·실패 연속…일생 통해 반 6등이 최고 성적
책·신문 읽지 않은 CEO, 회사 제대로 경영하기 어려워
'시장=자유'라는 생각은 큰 오해…시장 본질은 규칙의 합의
"기업 공개하면 주식 30%는 직원들 몫"
“너무 ‘포시랍게’ 자란 요즘 젊은이들에게 묻고 싶어요.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했는지.”
미국 대형 로펌 통상전문 변호사, 김앤장 국제변호사, 청와대 정책기획비서관, 대학 부총장. 화려한 이력의 전성철 세계경영연구원(IGM) 회장(63)은 ‘포시랍다’는 말을 여러번 했다. ‘궂은일 하지 않고 귀하게 자랐다’는 뜻의 경상도 사투리다. 자신의 삶을 “도전과 좌절의 연속이었다”고 표현하는 전 회장이 좋아할 단어는 아니다.
그는 국내 대표적인 최고경영자(CEO) 교육 기관의 CEO다. 노후를 고민할 시기인 55세에 IGM을 세워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IGM의 강의가 CEO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유를 그는 이렇게 표현했다. “회사 걱정에 새벽 2시에 잠을 깨 밤을 꼬박 새워본 사람들이 공감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라고.
서울 정동 영국대사관 앞에 있는 퓨전 한정식집 ‘달개비’에서 전 회장과 맛있는 저녁 시간을 가졌다. 죽과 물김치, 샐러드, 계절전 등이 나온 뒤 된장을 곁들인 누룽지(국수 선택 가능)로 마무리했다. ‘합리주의자’를 자부하는 전 회장의 단골집답게 맛과 양, 가격 모두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달개비엔 자주 오시나요.
“IGM멘토단 중 한 분인 이채욱 인천공항공사 사장 소개로 알게 됐는데, 마음에 들어 자주 옵니다. 이 사장이 ‘공기업 사장이 낼 수 있는 음식값으로 가장 높은 가격대’라고 하더군요.”
죽과 샐러드가 나오자 전 회장이 “막걸리? 양주? 어떤 것 하실래요?”라고 물었다. “나는 워낙 ‘비주류’니까…”라는 말을 붙여서. 막걸리를 시켰다.
▶경력이 다채롭습니다. 어떤 직업이 좋으셨나요.
“하고 싶은 일 다하면서 신나게 산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모든 일이 다 힘들더군요. 안정을 찾을만 하면 새로운 일에 도전했던 것 같아요. 갖은 고생 끝에 미국 변호사가 됐는데 자리가 잡힐 만할 무렵 한국으로 돌아왔죠. 김앤장에서 국제변호사로 일할 당시엔 미국 변호사가 대접을 제대로 못 받았어요. ”
▶정부와 정치권에서도 일하셨는데.
“김앤장에서 자리가 잡혀갈 때쯤 청와대 정책기획비서관으로 옮겼습니다. 검찰과 법원을 상대로 사법개혁을 했으니 그 압박이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죠. 300명이던 사법고시 합격 정원을 1000명으로 늘리라고 하니까…. 은사인 이홍구 당시 신한국당 대표의 부탁으로 대선캠프에도 발을 담갔는데 보통 일이 아니더군요. 차라리 그때 박세일 청와대 사회복지수석비서관 권유대로 국회의원에 출마하는 게 나을 뻔했어요. 끊임없이 도전과 좌절, 실패를 거듭했던 것 같아요.”
▶자전적 에세이집 《꿈꾸는 자는 멈추지 않는다》개정판을 10년 만에 내셨는데요.
“고민하는 청년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학교 다니던 시절에 비하면 모든 게 좋아졌는데 훨씬 많은 젊은이들이 방황하고 있는 것 같아요. 세칭 ‘괜찮은 학교·학과’라는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왔지만 15명 동기 중 졸업 후 취업한 사람이 두세 명밖에 없었어요.”
전 회장은 “꽤 괜찮게 팔리고 있다”며 웃었다. 그는 빈 잔에 막걸리를 채워줬다.
▶젊은이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었나요.
“‘자기답게 살라’는 얘기죠. 목표와 꿈이 확실하면 아프고 자시고 할 겨를이 없어요. ‘꼰대’(나이든 사람을 뜻하는 은어) 얘기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요새 젊은이들은 너무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으면서 ‘포시랍게’ 자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많은데.
“자신이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고민하는 데 시간을 투자하지 않아서 그래요. 대학 3학년 다니다 때려치우고 미대에 진학하는, 그런 친구들을 저는 좋아해요. 지금까지 지구에 떨어진 눈송이가 몇 개나 되는지 아세요? 경에 경을 곱하고 또 곱해야겠죠. 그런데 그 눈송이들이 똑같이 생긴 게 하나도 없다고 해요. 사람도 마찬가지죠. 전부 다르기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찾아야 합니다.”
▶부모의 역할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24시간 감시하고 공부하라고 닦달하면서 아이들을 수동적으로 끌려다니는 ‘객차’로 만들어 버리는 부모들이 많아요. 스스로 원하는 게 뭔지 발견하고 그걸 향해 달려나갈 수 있도록 마음속에 ‘기관차’를 심어주는 게 부모의 가장 중요한 역할입니다.”
▶어린 시절은 어땠나요.
“어렸을 때 부모님이 성적표 보자는 말을 한 번도 안했어요. 반에서 6등이 제 최고 성적입니다. 마음대로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마음에 기관차가 생겼던 것 같습니다.”
막걸리가 몇 잔 돌자 취기가 도는지 전 회장의 얼굴이 홍조를 띠었다. 목소리도 살짝 꼬였다.
▶평소 책을 많이 읽으시죠.
“2주에 한 권씩 정독합니다. 변화의 원천인 책과 신문을 읽지 않는 CEO는 제대로 경영하기 힘들죠.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새벽에 일어나 모든 조간 신문을 다봤다고 해요. 현대그룹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변호사 시절 아무리 바빠도 매일 월스트리트저널과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의 제목만이라도 꼭 봤습니다. 제 운명을 결정지은 《법적인 사고(Legal Reasoning)》를 읽었을 때 엄청난 희열을 느꼈어요.”
전 회장은 미8군에서 아르바이트로 번역 일을 하다 우연히 《법적인 사고》를 읽고 미국 로스쿨에 진학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법적·합리적인 사고가 적성에 맞고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다른 책도 쓰고 계시죠.
“반쯤 썼는데 가제목이 ‘시장을 변호한다’입니다. 시장에 대한 오해가 너무 많아 책을 쓰기 시작했죠. 가장 큰 오해는 시장을 전적으로 자유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시장의 본질은 규칙의 합의에 있어요. 규칙을 어기면 엄중한 벌을 주는 겁니다. 시장의 대표적인 예가 선착순이에요. 화장실 앞에서 먼저 온 사람 뒤로 줄을 서는 식이죠. 시장에 완전 자유를 주면 정글로 변해요. 규칙 안에서 마음대로 하는 게 시장입니다.”
▶경영자가 직원의 마음을 사려면.
“투명경영이 중요하죠. 여비서 한 명과 단둘이 일하던 창업 초기에도 6명의 사외이사를 뒀습니다. 한번은 모 패션그룹 회장이 휴가 때 쓰라며 1000만원을 주길래 회사 금고에 넣고 세금계산서를 보내줬죠. 지금도 제가 쓴 돈은 제 월급에서 깝니다.”
▶‘새벽 1시 클럽’이란 게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2007년까지만 해도 직원들 평균 퇴근 시간이 새벽 1시였어요. 몇몇 직원들은 새벽 1시쯤 회사 근처에서 어묵을 먹고 다시 들어와 일하곤 했죠. 이때 붙여진 이름입니다.”
종업원이 식사 주문을 받으러 왔다. 메뉴는 된장찌개가 딸린 누룽지와 국수. 전 회장이 다시 빈 잔에 막걸리를 따르며 권했다.
▶‘오너 경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CEO로서 역량이 있느냐가 문제죠.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 같은 사람이 그룹을 승계하는 것에는 불만이 없어요. 능력을 검증받았잖아요.”
▶국내 대기업 총수들과도 자주 만나셨죠.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현대중공업이 1987년 1억8000만달러를 받기로 하고 배를 만들었는데 업황이 나빠지자 발주자가 안 가져가는 일이 벌어졌죠. 소송 문제로 그해 12월 정 회장과 점심을 먹었어요. 6·29 민주화 선언 뒤 노조의 극렬한 투쟁으로 힘들 때였죠. ‘한국의 노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는 대답이 돌아오더군요. 의외였어요. ‘한국 노조원들은 대부분 고졸 이상의 학력을 갖고 있다. 말썽은 좀 피우지만 알을 낳는 닭을 죽이지는 않는다’고 하더군요.”
▶사모님을 만난 지 한 달 만에 프러포즈하셨죠.
“미국 로스쿨 시험에 모두 떨어지고 미국인 친구의 도움으로 작은 무역회사를 차려 부사장 직함을 갖고 있었어요. 당시만 해도 재미동포 실업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기꾼이었는데 제가 그 꼴이었죠. 운 좋게 친구 약혼녀의 친구를 소개받았는데, 당시 별 볼일 없던 저와 한 달 만에 결혼을 약속해 주더군요. 우스갯말로 ‘협상의 기술’ 덕분이었을 수도 있겠죠.”
전 회장은 IGM의 규모를 좀 더 키운 후 기업공개를 할 계획이다. 주식의 30% 정도는 직원들 몫으로 생각하고 있다. “50개국에 지사를 두고 직원의 절반을 외국인으로 채우는 게 꿈이에요. 2020년까지 IGM을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지적기관으로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 전성철 회장 단골집 달개비
자연 식재료로 한국 전통요리 재현…'통배김치' 별미
서울시의회와 덕수궁 사이 골목에 있는 ‘달개비’는 자연재료를 활용해 한국 전통요리를 재현해낸 음식점이다. 고객들에게 “맨홀 뚜껑에서 꽃을 피울 만큼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풀인 달개비의 생명력을 전해주고 싶다”는 의미에서 이름을 정했다고 한다.
농약과 비료를 쓰지 않고 재배한 친환경 식재료를 사용한다. 매일 자연재배 전문 재료공급 업체 및 경동시장 등지에서 재료를 구입해 식단을 짠다. 메뉴에도 자주 변화를 준다. 각종 계절나물을 활용하고 해산물은 살아 있는 재료를 쓰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통배김치가 곁들여 나오는 7만원짜리 ‘맑은 물’ 코스가 인기다. 중간에 놓인 물김치가 배와 어우러져 시원한 맛을 낸다. 죽과 통배김치, 활전복구이, 삼색전, 탕평채, 갈비구이가 차례대로 나온 뒤 된장국이 곁들여진 식사가 나온다. 점심과 저녁 모두 4만원, 5만5000원, 7만원의 세 가지 코스(1인분 기준)가 있다. 회의를 할 수 있는 비즈니스룸이 함께 있어 회의 장소로도 인기를 끌고 있다. 또 1층 4개 방은 샤워시설 등을 갖추고 있어 숙박도 가능하다. (02)763-3434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