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의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퇴출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유럽연합(EU) 각국은 재정위기 해법에 대한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분열을 거듭하고 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23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특별정상회의에서 유로본드(유로존 공동 국채) 발행 여부를 놓고 정면으로 충돌했다. 긴축과 성장을 둘러싼 이견도 여전했다.

독일 일간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FAZ)은 23일 “독일과 프랑스가 유로본드 도입 여부를 놓고 불협화음만 양산했다”고 보도했다.

EU 정상들은 이날 6시간에 걸친 비공식 정상회의에서 재정위기 해법을 논의했지만 “그리스가 유로존에 잔류하길 바란다”는 원론에만 합의했을 뿐 핵심 의제인 유로본드 도입과 성장정책 추진과 관련해선 입장차를 드러냈다.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더 이상 허비할 시간이 없다”며 “모든 국가들이 경제를 성장시키고 낮은 금리에 자본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며 유로본드 도입을 촉구했다. 엔다 케니 아일랜드 총리와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도 “이제 장기적인 해법을 내놓을 때”라며 올랑드 대통령에게 힘을 실었다.

반면 메르켈 독일 총리는 “유로본드는 유럽통합조약인 리스본조약 125조가 규정한 직접 구제금융 금지에 위반된다”며 “낮은 자금조달 비용 탓에 경제 거품이 커졌던 과거의 과오를 반복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네덜란드와 핀란드도 독일의 주장에 동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긴축과 성장을 둘러싼 논쟁도 재연됐다. 이날 회의에선 경기 부양으로 일자리를 늘려 재정위기를 극복하자는 올랑드 대통령의 주장에 스페인, 이탈리아 등이 가세했다. 그동안 긴축정책 지지세력이었던 오스트리아, 벨기에도 성장정책 쪽으로 넘어갔다. 반면 정부 지출 축소에 따라 자연스럽게 국채 발행이 줄고 금리가 안정되는 길을 찾자는 긴축정책 지지세는 위축됐다. FAZ는 “아직 독일을 버리지 않은 나라는 덴마크, 폴란드, 아일랜드 등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EU 각국 실무 차원에선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퇴출)에 대비하는 움직임도 감지됐다. 유로존 재무장관회의 실무그룹은 전화 회의를 갖고 그리스 퇴출 비상대책을 준비한다는 데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중앙은행(분데스방크)도 “그리스 이탈의 충격은 감내할 만하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그리스의 유로존 퇴출 불안에 유로화 가치는 2010년 8월 이후 가장 낮은 유로당 1.25달러 선까지 떨어졌다. 안전자산인 독일 30년물 국채 금리도 사상 처음으로 연 2.0% 아래로 떨어졌고 유럽 주요국 증시도 2%대 하락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