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사태’가 일어난 다음해 미국의 한 도시. 사내가 길을 걷고 있었다. 머리에는 이슬람교도를 상징하는 모자를 쓰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과 눈을 맞추지 못 하고 어쩔 줄 몰라 하며 무언가를 피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수상하다는 눈길을 보냈다. 이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최악의 테러라는 9·11 사태의 주범과 연관된 이슬람교도를 상징하는 모자. 그가 보인 수상쩍은 행동. 테러리스트이거나, 적어도 테러와 어떤 관계가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물론 필자가 여러분의 생각을 유도한 부분도 있다. 하지만 제시된 두 가지 정황만으로 그 사내가 테러와 관련됐을 것이라고 추측하지는 않았는가? 즉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테러리스트라면 이럴 거야’라는 생각에 맞는 증거들만을 찾아서 본 것은 아닐까.

만일 이렇게 생각했다면 여러분들은 확증 편향에 빠진 것이다. 확증 편향이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증거만을 받아들이고, 다른 생각을 입증하는 자료는 무시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성향을 말한다.

작년 KBS에서 방영한 ‘사회적 자본’이란 다큐멘터리에서는 사람들의 확증 편향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100분 토론에서 서울시의 무상급식 제공에 대한 격론이 벌어진 적이 있다. 토론이 끝난 뒤 방청객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방청객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상대방의 반대의견을 들어보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고 답한 사람은 2.1%에 불과했고, 60.4%는 전혀 생각이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생각이 확고해졌다는 사람이 27.5%에 달했다. 상대방의 반대 주장과 자료를 보고도 자신의 생각을 더욱 확신한 것이다. 다시 말해 상대방이 제시하는 증거는 다 무시됐다는 뜻이다.

기업에서 경영진이 이런 확증 편향에 빠진다면 낭패를 겪을 수도 있다. 많은 최고경영자(CEO)나 임원들은 자신의 성과를 위한 계획을 수립한다. 물론 수립 과정에서 많은 분석과 충분히 합리적이라고 생각되는 과정을 거쳤겠지만, 결론이 잘못될 수도 있는 것이다. 컨설턴트들은 제3자의 시각에서 그 사업을 바라보기 때문에 그것이 잘못된 판단일 가능성을 충분히 알고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컨설턴트들은 고객의 생각이 틀렸다고 지적해주지 않는다. 그들은 고객들이 확증 편향에 빠진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따라서 고객의 잘못을 지적하고 프로젝트를 잃느니, 고객이 원하는 자료와 결과를 제공해 주고 돈을 버는 쪽을 택하는 것이다.

임원들이 생각하는 일 잘하는 직원도 대부분 객관적으로 능력이 뛰어난 경우보다 상사의 말을 잘 듣는 ‘예스맨’인 경우가 많다. 이 현상도 결국은 임원들의 확증 편향이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확증 편향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불행하게도 연구 결과를 보면 결코 쉽지 않다. 자신의 확증 편향을 막으려면 매 순간 자신의 생각이 옳은가에 대해 회의를 품고 매번 검증해 보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정말 확증 편향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개인은 어렵지만 기업에서는 방법이 있다. 기업의 결정을 한 사람에게 맡기지 말고 집단결정으로 끌고 가는 것이다. 그리고 서로가 상대에 대해 견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면 확증 편향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로마의 가톨릭교에서 나온 ‘악마의 변호사(Devil’s Advocate)’는 확증 편향을 막기 위해 고안된 방안이다. 기업의 중대한 사안은 반드시 토론을 거쳐 결정하고, 매번 토론에서 돌아가면서 악마의 변호사 역할을 담당하도록 한다면 확증 편향에 빠지는 경우는 크게 줄어들 것이다.

나아가 개인의 경우에도 ‘악마의 변호사’ 방법을 활용해 볼 수 있다. 주위에서 가장 신뢰하는 동료나 친구에게 악마의 변호사 역할을 부탁하는 것이다. 만약 새로운 사업이나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결정했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 혹시 확증 편향에 빠져 잘못된 판단을 하지는 않았는지.

이계평 <세계경영연구원(IGM)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