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소니가 미국 온·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의 TV 가격 할인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그칠 줄 모르고 하락하는 TV 가격을 통제해 수익성을 회복하기 위한 전략이다. 아마존 등 온라인 쇼핑업체와의 가격 경쟁으로 실적 악화를 겪고 있는 베스트바이 등 가전 전문 소매업체들을 보호하겠다는 취지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22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소니는 지난달부터 미국 유통업체들이 아마존 등 온라인이나 오프라인 매장에서 제조사가 정한 가격보다 싸게 TV를 판매하거나 광고하는 행위를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WSJ는 이 같은 새 정책이 가격 인하 경쟁으로 수익성이 크게 악화된 제조사와 유통업체 모두에 숨통을 틔워주는 계기가 될 것으로 분석했다.

○가격 하락 더 이상 방치 안 된다

삼성ㆍ소니, 美 유통사 TV가격 할인 '제동'
미국 소비자가전협회(CEA)에 따르면 미국 내 평판 TV 평균 판매가격은 2009년 644달러에서 지난해 545달러로 3년 동안 15% 하락했다. 판매되는 TV의 평균 크기가 2007년 33인치에서 올해 1분기 38인치로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가격은 계속 하락하고 있어 업계에 부담으로 작용해왔다.

애플은 아이폰, 아이패드 등 인기 제품을 중심으로 이미 오래전부터 가격 통제를 시행해왔다.

소니도 캠코더나 게임콘솔 같은 인기 제품에 한해 가격을 엄격하게 관리해왔다. 미국 대법원도 제조사들이 유통업체들에 최저 가격 유지를 요구할 법적인 권리가 있다고 판결한 사례가 있다.

하지만 유독 TV 제조사들은 경쟁사에 시장을 빼앗길 것을 우려해 수익성 저하를 감수하면서도 가격 하락을 방치해왔다. 3D(3차원) TV 등 신제품이 소비자들의 지갑을 여는 데 실패하면서 이런 현상은 더욱 심화됐다. 과거에는 LCD(액정표시장치) TV 등 신제품을 비싸게 팔아 브라운관 TV 등 기존 제품의 가격 하락을 상쇄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이마저 여의치 않게 된 셈이다.

가격 경쟁은 특히 베스트바이 등 가전 전문 소매업체의 수익성을 갉아먹는 요인으로 작용해왔다. 베스트바이는 이날 1분기 순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5% 감소한 1억5800만달러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업계 전문가들은 제조사들이 온·오프라인 소매업체 가격을 모두 통제하면 소비자들이 베스트바이에서 제품을 확인한 후 실제 구매는 아마존에서 하는 이른바 ‘쇼루밍(showrooming)’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가격 통제 성공 여부는 미지수

삼성과 소니의 시도는 위험이 큰 도박에 가깝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TV 제조사 ‘빅5’ 중 LG, 파나소닉, 샤프는 가격 통제에 동참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삼성과 소니의 움직임을 오히려 시장점유율을 확대할 기회로 활용할 가능성도 크다. LG전자 미국법인의 제이 반덴브리 홈엔터테인먼트 부사장은 “소매업체와 고객 간의 거래에 우리가 참견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소매업체들이 모두 제조사들의 요구에 응할지도 미지수다. 이는 11월부터 시작되는 연휴 시즌에나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가전 소매업체들은 추수감사절 하루 전날인 ‘블랙프라이데이’를 기점으로 공격적인 할인을 통해 시장 쟁탈전을 벌이기 때문이다. 투자자문사인 제니몽고메리스콧의 데이비드 스트래서 애널리스트는 “만약 아마존이 제조사들의 정책에 따르지 않고 할인에 나설 경우 제조사들이 아마존에 납품을 중단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뉴욕=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