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가 두더지 잡기 게임 같은 양상이다. 한 쪽 두더지를 잡으니 다른 쪽 두더지가 튀어나오는 식이다. 전반적인 경제 회복의 발목을 잡아왔던 주택시장은 깨어나고 있다. 주택 매매 실적 등 호전되는 주요 주택경기 지표가 이를 말해준다. 그러나 연말 감세 혜택 종료에 따라 내년에 세금이 인상되고 재정지출 삭감마저 겹치는 ‘재정 벼랑(fiscal cliff)’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재정 벼랑이 미국 경제를 다시 침체로 내몰 수 있다는 분석이다.

◆호전되는 주택 경기 지표

미국부동산중개인협회(NAR)는 지난달 주택 매매 실적이 462만채로 전달보다 3.4% 늘어났다고 22일 발표했다. 이는 2010년 5월 이후 최대 증가폭이다. 월평균 주택 매매 건수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던 2008년 411만채로 줄어들었다가 2010년 419만채, 지난해 426만채로 늘어났다.

지난달 매매 중간가격도 17만7400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0.1%나 올랐다. 2006년 1월 이후 최고 상승률이었다. 물가가 안정된 가운데 일자리가 꾸준히 늘어나고 주택담보대출(모기지) 금리도 매우 낮아져 매매가 활발해진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 상무부가 최근 발표한 지난달 주택 착공 건수도 71만7000채로 전달보다 2.6% 증가했다. 시장에서 예측한 68만채를 웃돌았다. 지난해 4월보다는 29.9%나 늘어났다. 2006년 1월 주택 건설이 정점에 달했을 때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지만 2년 만에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주택경기 지수도 상승했다. 미국주택건설협회(NAHB)는 이달 NAHB/웰스파고 주택시장 지수가 29로 전달보다 5포인트 올랐다고 발표했다. 2007년 5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지수가 50 아래면 주택경기 부진을 뜻하지만 최근 5년 내 가장 높은 수치를 보여 경기가 호전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로렌스 윤 NAR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주택경기가 바닥을 쳤다”고 진단했다.

◆재정 벼랑시 -1.3% 성장

미국 의회예산국(CBO)은 이날 재정 벼랑 직면 여부에 따라 경제성장에 미치는 효과를 비교 분석해 발표했다. 의회가 관련 법을 처리하지 않으면 소득세와 사회보장세 감면 혜택, 실업수당 지급 연장 혜택이 연말에 종료된다. 여기에다 여야가 연말까지 재정적자 감축안 마련에 실패하면 지난해 여야 합의에 따라 내년 초부터는 국방비 등 1조1000억달러의 재정지출이 자동 삭감된다.

CBO는 재정 벼랑을 맞으면 내년 회계연도(2012년 10월~2013년 9월) 상반기에 경제성장률이 -1.3%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반기에는 2.3% 성장으로 회복돼 충격이 완화되겠지만 내년 전체로는 0.5% 성장하는 데 그칠 것으로 관측했다. 미국 경제는 2009년 저점에 도달한 뒤 연평균 2.4% 성장해왔다. 재정 벼랑을 맞지 않으면 내년 경제가 4.4% 성장(상반기 5.3%, 하반기 3.4%)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문제는 여야가 직면한 딜레마다. 올해 회계연도에 재정적자 규모는 1조171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지출을 삭감하고 감세 혜택을 줄이면 경기 부양이 안 된다. 지출을 삭감하지 않고 감세 혜택도 연장하자니 재정적자가 큰 부담이다.

야당인 공화당은 모든 계층에 대한 소득세 감면을 주장하는 반면 버락 오바마 정부와 민주당은 연소득 25만달러 이하의 가구에만 소득세 감면 혜택을 연장하자고 맞서고 있다.


◆ 재정 벼랑

fiscal cliff. 감세 혜택 종료에 따른 세금 인상과 지출 삭감 탓에 재정을 통한 경기부양 정책이 갑자기 뚝 끊기는 현상. 미국 의회예산국은 세금 인상과 지출 삭감을 병행하면 내년에 재정적자를 5000억달러 줄일 수 있지만 그만큼 경제 성장은 위축된다고 분석했다. 벤 버냉키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재정 벼랑이 닥치면 통화정책으로도 경기를 부양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이슈가 됐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