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도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신흥국가들이 통화정책과 물가 사이에서 고민에 빠져있다고 한다. 인도는 그간의 노력으로 물가가 잡히는 듯하자 경기부양을 위해 금리를 낮췄으나 다시 물가가 올라 추가 부양책을 써야 할지 고심하고 있다.

브라질은 높은 금리로 미국과 유럽의 유동성이 몰리면서 헤알화 가치가 높아졌고, 수출경쟁력이 약화되면서 성장이 크게 둔화됐다. 브라질 정부는 이 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금리를 낮추었는데, 덕분에 헤알화 가치는 떨어졌지만 이번에는 물가가 고개를 들어 걱정하고 있다. 아르헨티나도 정부의 인위적 환율 통제로 페소 가치가 떨어지면서 수입물가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 세 나라의 경우는 상황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불가능한 삼위일체(impossible trinity)’를 떠오르게 한다. 불가능한 삼위일체란 자유로운 자본이동, 환율안정, 그리고 독자적인 통화정책의 세 가지가 동시에 달성될 수 없다는 이론이다.

예를 들어 불황을 겪고 있는 나라가 경기부양을 위해 통화량을 늘리는 정책을 쓴다면 금리가 떨어지면서 국내 자본이 외국으로 빠져나갈 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그 나라의 통화가치는 떨어지면서 환율이 오르게 마련이다. 얼핏 단순해 보이는 이 이론은 브레턴우즈 시스템의 붕괴라는 커다란 역사적 현상을 설명하는 데 적용된다.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 미국은 불황에 시달리면서 금융완화 정책을 시행한다. 이는 금리하락으로 이어졌고, 자본유출이 발생하면서 달러화 가치를 위협했다. 브레턴우즈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축통화였던 달러 가치를 지켜야 했고, 이를 위해서는 외환시장에 개입해 달러를 사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시중의 통화량을 줄이는 정책이었고, 금융완화 정책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경기부양이라는 정치적 선택과 국제자본이동의 자유화를 따르기 위해 고정환율인 브레턴우즈 체제를 희생시킬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브라질의 경우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물가상승이 우려되면 이를 억제하기 위한 통화정책, 즉 높은 금리를 유지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자본이동이 자유로운 상황에서 외국자본이 유입될 것이고, 헤알화 가치가 높아지는 애초의 상황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사정인 것이다. 즉 물가안정을 위한 통화정책과 자본유입, 헤알화의 안정을 동시에 이룰 수 없는 것이다.

자본이동이 자유화된 오늘날 국제경제 환경에서 불가능한 삼위일체는 수출에 의존하고 있는 많은 국가들에서 어찌 보면 물가와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없다는 걸로 해석될 수 있다. 결국 생산능력을 향상시키는 경제의 체질개선이야말로 진퇴양난의 경제상황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전문가들의 조언은 상투적인 듯하지만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노택선 < 한국외국어대학 경제학 교수 tsroh@hufs.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