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최신 DSLR, '자동' 모드로만 찍나요?
인간의 판단, 의사결정, 창의적 문제해결을 전공분야로 하는 인지(인지)심리학자로서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받아온 질문은 예상 외로 간단하다. “어떻게 하면 획기적이며 결정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거나, 그리 할 수 있게 조직을 만드느냐”는 것이다.

사람들은 훌륭한 인재를 뽑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기도 하고, 인센티브를 제시하기도 한다. 자기계발서들을 구입해 읽으면서 자신을 연마하기도 한다. 그러나 노력과 투자는 꽤 하는 것 같은데 나 혹은 나를 포함한(혹은 내가 이끄는) 조직은 별다른 발전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가 사진에 꽤 조예가 있는 친구로부터 들은 한 친구 이야기 한 토막이다. 한 남자가 일명 똑딱이 카메라라고 불리는 디지털 카메라만 사용하다 좀 더 나은 사진을 찍어보겠다며 렌즈교환식 디지털카메라(DSLR) 하나를 장만했다. 그리고는 선반에 잘 모셔두었다가 화창한 봄날, 즐거운 마음으로 DSLR을 들고 가족과 함께 나들이에 나섰다. 아이들을 멋진 배경 앞에 세워두고 사진을 찍으려는 순간 무언가 막막해진다. 판매사원의 설명이 기억 났다. “여러 가지 기능이 있지만 잘 모르시겠으면 그냥 자동(auto)에 설정을 맞춰놓으시고 사진을 찍으세요. 그래도 꽤 괜찮게 사진이 나옵니다.” 그 남자는 판매사원의 설명대로 설정을 ‘자동’에 맞춰놓고 사진을 찍어본다. 액정화면을 통해 나온 사진은 정말 꽤 괜찮은 것 같다. 필자의 친구는 바로 이 순간이 그 남자가 영원히 그 괜찮은 DSLR을 버릴 때까지 ‘자동’으로 맞춰놓고 찍는 시작이 된다고 말한다. DSLR의 설명서에 나와 있는 그 수많은 기능들을 단 한번도 사용해 보지 않은 채 말이다. “도대체 왜 설명서를 읽지 않는 거냐고. 조금만 시간을 투자해 읽어놓으면 평생 기억에 남을 사진들을 두고두고 찍을 수 있을 텐데 말이야!”

맞는 말이다. 여러 가지 기능이 있는(그래서 할 수 있는 것과 더 잘할 수 있는 여지가 얼마든지 있는) 무언가를 지니고 있으면서 설명서를 제대로 읽지 않아 평생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물건들이 우리에게는 너무나 많다. 더 슬퍼해야 할 일이 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자신의 생각, 즉 인지(認知)에 있어서도 우리는 같은 실수를 범하고 있다. 이 중요한 인지가 어떻게 작동하고 활용될 수 있는가에 대해 설명서를 제대로 읽어 본 적이 있는가.

인간의 인지에는 정말 다양한 기능들이 포함돼 있다. 기억, 추론, 판단, 의사결정, 더 나아가 창의적 문제해결까지 말이다. 우리는 그런 기능이 있는 것만 알지 그 기능들이 어떻게 제대로 작동되는지 ‘원리’들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 좋은 결과물을 바라고 있지만 그 과정과 원리를 이해하는 데는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쉽게 설명해 놓은 매뉴얼이 그리 많지 않다. 이 매뉴얼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람들도 많지 않다. 모두 우리 인지심리학자들의 잘못이긴 하다. 다행히 필자의 유학시절 지도교수이자 연구 동료이며, 정신적인 벗인 아더 마크먼 미 텍사스주립대 교수가 무언가 하나를 만들어냈다. 《스마트 싱킹(Smart Thinking)》(진성북스)이다.

본문 내용에 기초해 ‘스마트 싱킹’이 얼마나 조직과 개인을 혁신적으로 만드는가를 하나만 얘기해 보자. 우리 모두는 디지털 카메라라는 혁신적인 제품을 실생활에서 쓰고 있다. 그런데 디지털 카메라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디지털 카메라 자체는 최초의 개발목적이 아니었다. 원래는 필름 가격을 낮추고자 하는 데 있었다. 필름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빛을 받으면 물리적인 반응을 하는 화학물질’이다. 이런 규정에 의하면 화학적으로 접근해야만 한다. 당연히 현존하는 기술로 화학적인 개선을 만들어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그 중 한 사람이 필름을 좀 다른 방식으로 규정해 보았다. 바로, ‘이미지를 담는 무엇’ 즉, 그릇의 개념으로 본 것이다. 그랬더니 훨씬 더 많은 아이디어가 가능해졌다. 그 그릇이 굳이 필름이라는 화학물질일 필요가 없어졌다. 따라서 컴퓨터에서 쓰는 것과 비슷한 저장장치와의 결합이 시도되었으며 그 결과가 오늘날의 디지털 카메라인 것이다.

이런 발상의 전환은 사물을 보는 관점이나 규정하는 방식의 다양성을 수용하는 조직 문화가 있었기에 가능하다. 이 책에는 이를 가능하게 하는 수많은 방법들이 담겨져 있다. 생각하는 방법과 능력에 발전을 만들어보고픈 사람이라면 꼭 한 번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추천할 수 있다.

김경일 < 아주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