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지수가 4개월만에 장중 1900선 아래로 떨어졌다. 유럽 재정위기 관련 악재가 중첩되면서 투자심리가 급격히 위축된 가운데 외국인 매물이 연일 출회돼 지수 발목을 잡고 있다.

하지만 증시 전문가들은 현 시점에서 한국 증시의 밸류에이션(실적대비 주가수준)을 고려하면 추가적인 급락 장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지 않다며 단기 지지선으로 1870~1880 수준을 제시했다.

15일 오후 2시20분 현재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13.84포인트(-0.72%) 떨어진 1899.89를 기록 중이다. 장중 1881.80까지 떨어져 1880선을 위협하기도 했다.

그리스의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탈퇴 및 디폴트(채무불이행) 우려가 재차 고조된 상황에서 국제 신용평가사인 무디스가 이탈리아 26개 은행의 신용등급을 강등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지수는 1900선 아래로 밀렸다.

외국인이 10거래일 연속 '팔자'에 나서 지수 하락을 주도하고 있다. 외국인은 이달 들어 지난 14일까지 2조29억원어치 주식을 순매도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다만 증권가에선 이 같은 급락세가 장기화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데 보다 무게를 두고 있다. 글로벌 금융안전망이 강화돼 유럽 재정위기 우려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이 두 차례의 장기대출프로그램(LTRO)을 통해 1조유로가 넘는 유동성을 유럽 시중은행에 공급했고, 유럽 각국은 유럽안정화기구(ESM) 조기 출범과 유럽재정안정기금(EFSF) 등 유로존 구제금융기금 확충을 통해 8000억유로 규모의 방화벽을 확보한 상태다.

또한 국제통화기금(IMF) 역시 글로벌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4300억달러의 재원을 확충한 상태고,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3(한중일)' 국가들은 아시아 역내 금융위기 방화벽인 치앙마이이니셔티브다자화기금(CMIM)을 2400억달러로 확대해 상대적으로 금융시장 안정성이 높아졌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이에 코스피지수가 단기적으로 1870~1880 구간에서 지지될 수 있을 것이란 의견이 나오고 있다.

2010년 5월 그리스 위기 발생 당시와 유사한 주가수익비율(PER)을 적용할 경우 코스피지수가 1800선을 밑돌아 1790선까지 떨어질 가능성이 있지만 이번 사안이 새로운 악재가 아니란 점에서 저가 매수세 유입에 따른 기술적 반등이 나타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배재현 한화증권 연구원은 "아직은 이슈 영향력이 크기 깨문에 밸류에이션 만으로 지수 변동폭을 예상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코스피지수 지지영역은 밸류에이션 측면에서 1873.85, 기술적 측면에서 1863.32~1878.16 수준으로 판단돼 1900선 미만은 매수 구간"이라고 진단했다.

배성영 현대증권 연구위원은 "하락 압력이 커진다고 해도 현 시점의 악재가 새로운 악재는 아니라는 점에서 미국 국가 신용등급 강등시기와 같은 충격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며 "2010년 5월 코스피지수 저점이 주가순자산비율(PBR) 1.17배, PER 8.3배 수준에서 형성됐다는 점을 고려할 경우 최악의 시나리오가 전개되지 않는다면, PBR 1.17배 수준인 1880선 전후에서 단기 하단이 확인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가격 메리트를 고려하면 적극적인 매수 구간이란 의견도 제기됐다.

곽현수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 한국 증시의 PER이 8.5배인 상황에서 2009년 이후 미국 신용등급 강등 시기를 제외하면 증시 PER이 8배를 하회했던 경우가 없다는 점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며 "코스피지수 1800~1850 구간은 미국 신용등급 강등 당시 1700선과 같은 의미"라고 설명했다.

기술적 분석상으로도 저평가 상태란 진단이다. 2달 동안 하락세가 이어지면서 코스피지수 주봉 기준 스토캐스틱이 지난해 8월 당시보다 낮은 수준을 나타내는 등 과매도 신호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정승재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상승·하락 종목 수 비율인 ADR이 2001년 이해 바닥권에서 반등을 시도하고 있는데, 과거 ADR 바닥권 도달 시 지수 역시 저점을 확인해 왔다"고 밝혔다.

반면 증시 하락에도 불구하고 최근 국내 기업들의 실적 전망치는 상향 조정되고 있는 상황이다. 동양증권에 따르면 분석 대상 기업 200개 종목의 총 연간 실적 전망치는 지난 14일 기준 107조600억원을 기록해 전주 및 전월 대비 각각 0.22%, 1.66%씩 증가했다.

다만 일각에선 단기 반등 이후 재차 약세 국면이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유승민 삼성증권 연구원은 "기술적 반등을 기대할 만한 상황에 도달했지만 그 이상은 어렵다"며 "조정이 끝나는 가격으로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한국지수 12개월 예상 PER 기준으로 8배 수준을 주목하고 있고, 이는 코스피지수 1800선 이하"라고 밝혔다.

반복되는 불확실성 여파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한국 증시의 내재위험프리미엄이 상승하고 있어 투자가들이 충분히 싼 가격에 이르기 전까지 쉽게 매수에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유 연구원은 예상했다.

한경닷컴 오정민 기자 bloom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