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기업 다산반도체정밀(대표 정장호)은 최근 반도체 장비 개발 기간을 절반으로 줄였다. 이로써 다산은 인쇄전자시장 진출이 가능해졌다. 100억 원 이상의 매출 효과도 기대된다.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의 일본 퇴직 기술자 매칭 사업을 통해 지난해 11월부터 타가시라 사토시 씨(75)의 고문을 받은 덕이다.

지난 15일 전북 전주시 여의동 나노기술집적센터. 1991년 설립된 다산은 연구·개발(R&D)을 담당하는 기술연구소를 1년 전 이곳에 만들었다. 직원 8명이 천안 본사를 오가며 반도체 장비 완성에 힘을 쏟고 있다.

반도체의 근간이 되는 소재인 실리콘 웨이퍼를 생산할 수 있는 장비는 50% 이상 완성됐다. 앞으로 100일 안에 개발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장비로 차세대 능동형 전자태그(RFID)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에 소재로 쓰이는 부품을 생산할 수 있다. 다산은 사업 진행 과정에서 전북대, 전주대 등과 기술 협력은 물론 5개 중소기업들과 연계 사업도 벌였다.

전 직원이 40명인 작은 벤처기업이 '차세대 먹거리'를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은 히타치제작소에서 36년간 일했던 기술자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타가시라 씨는 지난해 10월 다산과 첫 만남을 가졌다. 11월부터 한번 방문에 3박4일씩 다산에 머물며 장비 콘셉트의 가닥을 잡았다. 타가시라 씨는 다산이 장비 설계를 해놓으면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수정했다. 조립된 장비는 이제 모양을 갖췄고 연속 공정을 잘 할 수 있도록 다듬는 작업에 돌입했다.

최근 인근 대학 연구진과 함께 공정이 잘 되는지 여부를 알아보는 실험도 하고 있다. 기자가 방문한 날에도 타가시라 씨는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까지 일했다.

안정민 다산 개발부 과장은 "캐드로 된 설계를 하루에 10번 바꿨고 전혀 다른 방법으로도 시도하자며 2시간 동안 쉬지 않고 설득하시는 분" 이라며 "일본에 다녀 오면 '전에 있던 것이 틀렸다 다시 하자'는 식으로 가르쳐줬다"고 설명했다.

이승태 기술연구소 상무는 "독자적으로 개발했으면 3년 정도 걸렸을 작업을 시행착오 없이 진행하고 있다" 며 "두, 세 번 설계할 것을 한 번에 하는 등 연구·개발(R&D) 기간을 절반으로 줄였고 비용을 5억 원 가량 절감했다"고 말했다.

다산은 10년 전부터 도시바 계열사인 시바우라나, 히타치 등 일본 기업으로 직접 가서 교육을 받기도 했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구체적인 기술을 가르쳐주는 기업들은 없었다. 한국 기업들이 기술 측면에서 쫓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타가시라 씨는 달랐다. 그는 "한국 중소 기업에 직접 와보니 일본 기업 기술력의 80% 정도였고 배우려는 의지가 강해 가르치는 입장에서 보람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타가시라 씨는 한국과 인연이 깊고 일에 대한 열정도 높다. 그는 1990년 국내 화학 업체에 기계를 납품받기 위해 방한했을 때부터 NHK의 방송을 보면서 한국어를 익혔다.

이승태 상무는 "이런 분과 일하는 것 자체도 고마운 일" 이라며 "오랜 경험을 갖춘 기술자가 방향을 잘 잡아주는 데다 권위 의식도 없어 직원들과 함께 식사하고 당구장, 노래방도 함께 간다"고 소개했다.

이어 "한일기술협력재단 사업에 대해 타가시라 씨가 직접 말씀해줘 도움을 받고 있다" 며 "이를 겪어보지 않은 다른 기업들은 '비용 들여서 그런 거 왜 하냐'고도 하는데 일본 기술자가 많은 도움이 된다는 소개를 하고 다닌다"고 말했다.

타가시라 씨는 "과거 일본 기술력이 높고 한국이 낮으니 배우라고 하는 상황도 있었다" 며 "이젠 양국이 함께 개발하고 제품을 생산하는 등 상호 분업하는 관계로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문제는 한국 기술자들이 재료공학 등 기초 기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며 "이를 지원하면 일본과 동등한 수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타가시라 씨는 1959년에 히타치에 입사해 20년 동안 인쇄기계 관련 일을 했다. 1965년 부터 15년간 공작기계설계 부문에서 일했다. 퇴직 전 7년 정도는 히타치 산하 '히타치정공 엔지니어링'에서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전주=한경닷컴 김동훈 기자 d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