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지역에 있는 A은행 프라이빗뱅킹(PB) 센터의 수신액은 최근 1000억원 가까이 줄었다. 작년 말에 비해 25%나 감소한 것이다. 이 센터에서 1000억원이 빠지는 동안 인근 산업은행 대치지점은 1500억원의 자금을 새로 끌어들였다.

산은 대치지점은 연초부터 다른 은행보다 높은 정기예금 금리를 내걸며 공격적으로 영업에 나섰다. A은행 관계자는 “빠져나간 돈 중 상당 부분은 산업은행에 흘러들어갔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강남 부유층이 모여 사는 서울 삼성동·대치동 일대 은행들에 ‘산업은행 경계령’이 내렸다. 산업은행이 내놓은 KDB다이렉트 상품이 다른 은행에 비해 높은 금리를 제공해 자산가들의 돈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고 있어서다. 은행들은 산업은행의 고금리 정책이 ‘시장을 어지럽히고 있다’고 비판하면서도 고객을 빼앗길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고금리 약속해 자산가 뭉칫돈 흡수

"産銀에 강남 돈 다 뺏길 판" 은행권 속탄다
산업은행 수시입출금 상품(KDB다이렉트 Hi어카운트) 금리는 연 3.5%, 정기예금 상품(KDB다이렉트 Hi정기예금) 금리는 최고 연 4.5%다. 시중은행에 비해 수시입출금 상품은 연 3.0%포인트 정도, 정기예금은 연 0.4~0.6%포인트가량 높다.

이렇게 높은 금리는 시중은행들로서는 감당할 수 없다. 기업공개(IPO)를 앞둔 산업은행이 고객 기반을 확충하기 위해 거의 마진을 남기지 않고 판매하는 ‘미끼상품’이기 때문이다. 또 산업은행의 지점 수는 65개로 국민은행(1170개) 우리은행(960개) 등에 비해 훨씬 적다. 은행들은 이에 따른 산은의 비용 절감 효과를 0.3%포인트 정도 금리차로 계산하고 있다.

한 금융회사 회장은 최근 강만수 산은금융그룹 회장에게 KDB다이렉트 상품을 두고 “뒤통수를 망치로 한 대 맞은 것 같다”며 강력히 항의했다는 후문이다. 산업은행의 다이렉트 뱅킹 예금 잔액은 내달 초 1조원을 돌파할 전망이다. 특히 지난 1분기 예금 증가분 중 80%가 강남지역에서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시중은행 ‘속수무책’

시중은행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는 상황이다. 윤성용 농협은행 서울영업본부 마케팅추진팀장은 “농협은행은 평균 연 3.9%를 주는데 산업은행과 0.6%포인트까지 차이가 난다”며 “강남 자산가들의 특성상 금리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대책을 고심하고 있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고 털어놨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통상 연 3.93% 금리를 주면 ‘노 마진(이윤 없음)’으로 판단한다”며 “국민은행의 30년 분할상환 장기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이 최저 연 4.7%라는 점을 고려하면 산업은행 수준의 금리를 제공할 수 없다”고 했다.

박승안 우리은행 투체어스강남센터 부장은 “거액을 예치해도 최고 금리는 연 4.0% 안팎”이라고 전했다. 김현규 하나은행 강남PB센터 팀장도 “지점장 전결금리를 포함해도 연 4.03%까지밖에 줄 수 없다”며 “산업은행의 연 4.5%는 저축은행 금리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은행들은 고육지책으로 ‘금리 대신 서비스’ 정책을 펴고 있다. 전유문 국민은행 대치지점 수석지점장은 “예금 고객에게 선물을 주거나 업무 처리를 보다 빨리 해주는 식으로, 가격보다는 비가격 요소로 대응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추후 대출금리를 낮게 해주겠다고 약속하는 방식도 쓰고 있다”고 전했다.

‘후일을 기약한다’는 유형도 있다. 김원유 기업은행 강남지역본부 영업총괄팀장은 “산업은행이 내년까지 고금리를 주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추후 산업은행에서 이탈하는 고객을 다시 유치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했다.

이상은/장창민/류시훈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