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크의 백미를 일컫는 말이 ‘샤토브리앙’이다. 이 요리는 프랑스 샤토브리앙 남작의 요리사가 그를 위해 개발한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도 정작 작가이자 정치가인 프랑수아-르네 드 샤토브리앙(1768~1848)보다 더 잘 알려져 있을 정도다.

샤토브리앙은 프랑스 생말로에서 브르타뉴 지방의 오래된 귀족가문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그때 집안은 파산 상태였다.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잔반’인 아버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축적해 마침내 파산한 가문을 일으켜 세웠다. 군인이었던 샤토브리앙의 아버지는 식민지와의 상업거래에 노예 매매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렇게 부도덕한 재산 축적을 통해 브르타뉴 지방의 콩부르 성을 사고 백작 지위를 얻으면서 몰락 귀족을 벗어날 수 있었다.

영어로 ‘더티 리틀 시크릿(dirty little secret)’이라는 표현은 ‘알리고 싶지 않은 비밀을 누구나 한두 개쯤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누구에게나 마음속에 꼭꼭 숨겨두고 싶은 불명예로운 일이 있다. 이는 개인이나 가문뿐만 아니라 국가에도 해당한다. 수많은 명문가와 인재들을 만나본 경험에 비춰보면 완벽한 인간이나 완벽한 집안은 없다. 완벽하다 싶은데 꼭 한두 개의 결핍 혹은 흠결은 있었다. 신의 시샘이랄까, 이게 완전하다 싶으면 또 하나의 결핍이 반드시 보이는 것이다.

샤토브리앙 가의 경우 아버지의 부 축적이 그 자신뿐만 아니라 자녀들에게 ‘더티 리틀 시크릿’이 됐다. 이는 자신과 가족의 불행을 예고한 것이기도 했다. 대혁명 와중에 아버지는 혁명세력에 의해 묘가 파헤쳐지고 형은 단두대에서 죽는 등 가족의 비극이 잇따랐다. 마치 조선시대 반란세력이 부관참시를 당하고 농민반란이나 동학혁명 때 토호와 지주들이 생명을 앗긴 것처럼 말이다.

아버지는 부를 축적하고 가문을 일으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사회적으로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말하자면 사회적으로는 실패한 아버지였다.

그런데 여기서 자녀교육의 역설이 일어난다. 빅터 고어츨 부부와 아들인 테드 조지 고어츨이 공저한 《세계적 인물은 어떻게 키워지는가》에 따르면 미국의 저명인사 4분의 1은 아버지가 실패자였다. 자녀를 위해서라도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 시대의 아버지들이 조금은 위안을 삼을 만하지 않을까.

샤토브리앙은 아버지의 ‘나쁜 성공’과 이로 인한 비극적인 가족사에도 불구하고 불운을 딛고 일어선다. 그 역시 아버지를 이어 군인이 됐지만 이후에는 아버지와 다른 길을 걸었고 사회적으로도 큰 명성을 얻었다.

그는 프랑스 낭만주의 문학과 문인들에게 깊은 영향을 준 작가로 성장했다. 더욱이 프랑스 최고의 문인으로 불리는 빅토르 위고가 문학의 길을 걷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위고는 14세 때 “샤토브리앙처럼 될 것,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일찌감치 샤토브리앙을 ‘역할모델’로 삼았다.

세계적인 인물들에게는 외부 세계로의 ‘여행’이 커다란 전기를 제공하곤 한다. 샤토브리앙에게도 전기가 된 것은 23세 때의 아메리카 대륙 여행이었다. 그는 미시시피 강가의 인디언의 삶을 접했고 이 경험은 35년 후 《나체즈 족》을 발표하는 밑바탕이 돼 줬다. 왕당파였던 그는 외무대신 등 두 번의 장관직과 대사직을 수행하면서 정치가로도 활동했다.

샤토브리앙에게는 아버지가 ‘더티 리틀 시크릿’이었지만 그 결핍이 오히려 그를 대가로 만들어줬다고 할 수 있다.

최효찬 < 연세대 연구원·자녀경영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