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전 사라진 조직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듯하네요.”

한 증권사 고위 임원은 4·11 총선 결과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옛 대우경제연구소 출신들이 잇따라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데 대한 평가다. 대우경제연구소 출신들이 금융투자업계의 고위 임원 같은 ‘전통 영역’을 넘어 국회 진출에 성공하면서 이 연구소 출신들이 새삼 관심을 받고 있다.

이번 총선을 통해 대우경제연구소 출신 4명이 금배지를 달게 됐다. 모두 새누리당 소속이다. 원내대표 후보로 거론되는 이한구 의원(대구 수성갑·이번 당선 포함 4선)을 비롯 정희수 의원(경북 영천·3선), 안종범(비례대표·초선) 강석훈(서울 서초을·초선) 당선자가 그들이다.

이 의원은 대우경제연구소가 설립된 1984년부터 15년 동안 소장을 지냈다. 3명의 당선자들은 이 의원 밑에서 1990년대 중·후반에 팀장을 맡았다. 정 의원은 지방산업팀장을 역임한 지역경제 전문가다. 성균관대 교수로 옮긴 안 당선자는 재정팀장을 맡았던 정책통이다. 성신여대 교수로 자리잡은 강 당선자는 금융팀장 출신으로 금융정책 등에 밝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들은 새누리당의 ‘친박 정책 브레인’으로 꼽힌다.

대우경제연구소는 1980~1990년대 옛 대우그룹의 싱크탱크 역할을 수행했다. 1980년대까지는 그룹 경영에 필요한 거시경제·산업·기업 분석 및 전망 자료를 생산하는 데 치중했다. 1990년대 들어선 재정·지방경제 분야 등까지 연구분야를 확대하고 공공정책 제언에도 적극 나섰다. 전성기 때는 120여명의 연구인력을 보유, 한국개발연구원(KDI)과 더불어 ‘국내 양대 연구소’란 평가를 받기도 했다.

1999년 대우그룹이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대우경제연구소도 해체의 길을 걷게 된다. 2000년 연구소 조직의 절반가량은 대우증권 리서치센터와 통합됐다. 나머지 절반은 한 투자자문사에 매각됐다. 이 과정에서 연구원들은 증권맨으로 남거나 학계 등으로 진출했다.

증권업계에 남은 연구원들은 증권사와 자산운용사에서 활동하다가 최근 최고경영자(CEO) 등 고위직에 오르고 있다. 정유신 한국벤처투자 사장, 김석중 현대인베스트먼트자산운용 사장, 한동주 흥국투신운용 사장, 김영호 트러스톤자산운용 공동대표, 윤희빈 지안리서치 대표, 이철순 와이즈에프엔 사장이 대우경제연구소가 배출한 증권업계 CEO들이다. 신성호(우리) 이종우(솔로몬) 이종승(NH) 임진균(IBK) 조익재(하이) 최석원(한화) 이원선(토러스) 씨 등 주요 증권사 리서치센터장도 대우경제연구소 출신이다.

대우경제연구소 출신들의 친목 모임인 ‘대우경제연구소 OB회’ 총무인 와이즈에프엔의 이 사장은 “대우경제연구소는 단순한 학술연구를 넘어 실물경제를 지향한 연구에 집중했다”며 “연구원들은 매일 밤 10시가 넘어 퇴근할 정도로 도제 시스템 하에서 강한 트레이닝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이어 “이런 전통은 연구원들이 다양한 분야에 진출해서도 전문성과 경쟁력을 갖고 활동하게 하는 배경으로 작용했다”고 덧붙였다.

이상열 기자 mustaf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