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종목이라는 설움을 딛고 세계선수권대회 사상 첫 4강 진출이라는 ‘기적’을 일궈낸 컬링 여자국가대표팀의 김지선 스킵(주장·25)은 자신만만했다. 21일부터 시작되는 국가대표 선발전을 준비 중인 그를 서울 공릉동의 태릉빙상장에서 만났다.
‘빙판 위의 체스’라고 불리는 컬링은 팀당 4명의 선수가 1엔드당 2번씩 총 10엔드 동안 19.95㎏의 둥글넙적한 돌인 ‘스톤’을 던져 ‘하우스’라는 구역에 집어넣으면 득점하는 경기다.
그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늘 역전승을 노렸고 그 꿈을 실현했다.
“세계 최강인 스웨덴과의 2차전을 잊을 수 없어요. 9엔드에서 스웨덴에 1점 뒤졌는데 점수를 낼 수 있는 하우스 안에 상대팀 스톤이 훨씬 많았어요. 마지막 샷으로 상대방 스톤을 밀어내야 역전할 수 있었죠. 앞엔 스톤 두 개가 가로막고 있어 더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고민 끝에 앞의 두 스톤 사이로 마지막 샷을 던졌어요. 그보다 더 잘 던질 수 없었죠.”
9엔드에서 그의 마지막 샷은 아슬아슬하게 앞의 스톤 두 개를 뚫고 하우스로 들어가 스웨덴 스톤을 밀어냈다. 관중은 신기에 가까운 샷에 환호했다. 결국 9엔드에서 실점을 1점으로 막아낸 덕에 마지막 10엔드에서 9-8 역전승을 거둘 수 있었다. 세계 최강 스웨덴을 꺾은 대표팀은 이후 파죽의 6연승을 달리며 4강에 진출했다.
그는 스킵을 맡은 지 2년밖에 안 됐지만 노련하면서도 과감한 플레이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컬링 강국 캐나다 대표팀의 일레인 잭슨 감독이 “한국에서 김지선 같은 선수를 본 적이 없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갖고 있는데 김지선은 경기를 즐기러 나온다”고 극찬했다.
“아쉬움도 크죠. 4강에 진출하고 준결승에서 스위스에 졌을 땐 펑펑 울었어요. 결승을 넘어 우승 코앞까지 갔다가 내려오니 아쉬움이 컸죠. 막상 캐나다에 져서 동메달을 놓치고 보니 오히려 약이 된 것 같아요. 우승까지 했으면 자만했을 텐데 4강에서 멈췄으니 앞으로 뛰어넘어야 할 산이 더 남은 거잖아요.”
한국대표팀은 끊임없는 실패를 밑거름 삼아 성장했다. 덴마크에서 열린 작년 세계선수권에서는 2승9패로 하위에 머물렀다. 빙질을 제대로 읽지 못해 대회 초반 연거푸 패했다. 이는 선수들에게 좋은 경험이 됐고 처음 나간 아시아·태평양선수권과 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우승하며 세계선수권 준비에 자신감을 얻었다. 스킵은 빙질을 읽고 전략을 세우는 포지션이다. 명확한 판단력과 강한 추진력, 집중력을 가져야 하고 승부를 결정짓는 마지막 샷을 던져야 한다는 부담감도 이겨내야 한다. 그는 이를 위해 명상을 한다.
“가장 힘든 건 자신과의 싸움이에요. 스킵은 한번 결정하면 주춤하지 말고 밀어붙여야 하죠. 결정을 번복하면 실수하게 돼요. 멘탈 훈련을 위해 하루에 한 시간씩 명상을 합니다. 부정적인 생각은 지우고 긍정적인 생각만 해요. 시상대에 올라가 금메달을 목에 거는 생각만 하죠. 올해 명상 덕을 톡톡히 본 것 같아요.”
그는 컬링을 고등학교 때 처음 시작해 올해로 경력 10년째. 눈앞에 다가온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대표가 되는 게 가장 급하다. 세계선수권 4강의 성적을 올렸지만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을 다른 선수에게 맡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후엔 더 큰 목표가 기다리고 있다.
“스위스의 스킵인 오트 선수는 컬링 경력이 30년이나 돼요. 서른두 살이 되는 2018년엔 제 기량이 절정에 오르지 않을까요. 홈그라운드에서 치르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은 제 무대로 만들 겁니다.”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