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지는 저녁
정호승

꽃이 진다고 아예 다 지나

꽃이 진다고 전화도 없나

꽃이 져도 나는 너를 잊은 적 없다

지는 꽃의 마음을 아는 이가

꽃이 진다고 저만 외롭나

꽃이 져도 나는 너를 잊은 적 없다

꽃 지는 저녁에는 배도 고파라


어제 아침 비에 피었던 꽃이 오늘 저녁 바람에 우수수 떨어집니다. 피는 데는 오래 걸려도 지는 데는 금방인 봄꽃. 붉디붉은 그 잎들을 보며 ‘지는 꽃의 마음을 아는 이’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심하게 토라져 있습니다. 꽃이 진다고 아예 다 지는 것도 아니고 세상 모든 게 끝난 것도 아닌데 ‘꽃이 진다고 저만 외롭나’ 아무리 그래도 나는 너를 잊는 적 없는데…. 김용택 시인은 “아름다운 사랑도 아름다운 이별도 없는 삭막한 시절, 메말라가는 가슴을 적시는 이 시가 나를 헉, 허리 꺾이게 한다”고 했는데 그 이유를 알겠습니다. “저 깊은 어느 그리운 곳에서부터 배고파 오는, 이 허리 꺾이는 허기와 솟아나는 눈물”이 곧 한 뿌리에서 나왔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꽃과 시는 지독한 외로움과 간절한 그리움, 절실한 결핍 속에서 솟아나는 맑은 샘물입니다.

고두현 문화부장·시인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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