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고는 못 살아요.”

두 악바리 성악가가 만났다. 독일 명문 오페라극장 도이체 오퍼 베를린에서 전속가수로 활약하고 있는 테너 강요셉 씨(34)와 이탈리아 제노바 카를로펠리체 극장에서 주역을 꿰찬 리릭 소프라노 홍주영 씨(31). 이들은 3일 개막하는 국립오페라단 50주년 기념공연 ‘라 보엠’에서 비운의 연인 로돌포와 미미로 만난다.

오페라 ‘라 보엠’은 파리 뒷골목 보헤미안들이 크리스마스 이브에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일화를 그린 푸치니의 대표작. 6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 극장에 오른 뒤 5월 중국 국가대극원 오페라하우스로 떠난다.

낙천적인 시인 로돌포 역을 맡은 강씨는 “사랑하고 아파하는 젊은이의 감정을 모두 쏟아낼 것”이라며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 울부짖는 연기를 보여준 김수현 씨에게 감동받아 공부 중”이라고 말했다. 맑고 서정적인 음색으로 유명한 그는 도이체 오퍼 베를린에서 ‘세빌리아의 이발사’ 주역으로 수백 차례 출연한 젊은 중견. ‘라 보엠’과는 첫 인연이지만 그는 “가장 좋아하는 배역”이라며 “이메일 주소도 ‘로돌포강’”이라고 했다.

죽음 앞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미미 역의 홍씨는 “소프라노라면 어린 나이에 한번쯤 하고 싶은 배역”이라며 “요즘 K팝스타 등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악착같이 도전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자극받는다”고 말했다. 지난해 800 대 1의 경쟁을 뚫고 제노바 카를로펠리체 극장에서 유일한 동양인 ‘미미’가 된 그는 다른 이탈리아인들을 제치고 ‘최고의 미미’라는 찬사를 받았다.

강씨에게는 승부사 기질이 많다. “어느 배역이든 한 번 망치면 끝”이라고 말한다. 베를린 국립음대 장학생을 거쳐 2002년 도이체 오퍼 베를린에 입성한 지 1년 만에 전속가수가 됐다. 첫 4~5년은 작은 배역만 맡았다. 성에 차지 않았다. 캐스팅 관계자들을 만날 때마다 “딱 한 번만 시켜 보고 결정해”를 입버릇처럼 달고 다녔다.

동양인에게 좀체 내주지 않는다는 ‘마술피리’ 타미노 왕자 역을 따냈다. 6개월을 연습하고 단 한 차례 공연 기회만 주어졌다. 한국인에게 독일어로 부르는 오페라를 시켜 놓고 관계자들은 노심초사했다. 공연이 끝나자 반전이 일어났다. 시즌마다 공연 횟수가 늘어 그는 이제 ‘도이체 오퍼의 타미노 왕자’다. ‘라 트라비아타’ ‘사랑의 묘약’ ‘신데렐라’까지 줄줄이 배역이 따라왔다. 오는 12월에는 모차르트 ‘레퀴엠’에 도전한다.

홍씨는 요즘 “날개를 단 기분”이라고 했다. 추계예술대를 거쳐 한국예술종합학교 성악과를 졸업하고 유학길에 오른 그는 이탈리아의 산 마리노 레나타 테발리 국제콩쿠르, 줄리에타 시미오나토 국제콩쿠르, 스페인 프란체스코 비나스 국제콩쿠르 등을 휩쓸었다. 지난해 ‘라 보엠’의 ‘미미’ 역을 계기로 유럽 매니지먼트사와 전속 계약도 맺었다.

둘은 정명훈 서울시향 예술감독이 직접 캐스팅했다. 콩쿠르에서 홍씨를 눈여겨보던 정 감독의 유럽 매니저가 직접 오디션하고 ‘라 보엠’ DVD를 서울로 보내왔다. 강씨는 지난해 서울시향과 광복절 음악회, 말러 8번 연주회 등에서 협연자로 나섰다가 러브콜을 받았다. 이 커플의 최대 무기는 뭘까.

“아리아만 신경쓰던 오페라는 옛날식이죠. 몸짓과 표정, 눈빛으로 노래하는 ‘토털 오페라’를 기대하세요.”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