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이사 이외에 회사가 팔린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어요. 정말 당황스러워요. 직원이 190여명에 달하는데 대표는 '동요하지 말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답답한 심정입니다."

최대주주 변경을 수반한 인수·합병(M&A) 계약을 체결한 지 하룻 만에 이를 번복한 시스템소프트웨어 개발사 인스프리트의 한 직원 얘기다. 이 회사 최대주주(지분 7.8%)인 이창석 대표는 이번주 다급히 M&A를 시도했으나, 매수인의 계약금(25억원) 미납으로 결국 실패했다.

◆ 감사보고서 제출시한 전후 M&A 봇물…이상징후 가능성 높아

최근 증시에 'CEO 리스크'가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특히 감사보고서 제출 시한(3월23일)이 임박하면서 다급히 인수·합병(M&A)을 시도한 곳들이 잇따르고 있어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한계기업들이 많은 코스닥 시장에서 이러한 M&A가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21일 한국거래소 등에 따르면 이달 들어서 최대주주 지분 및 경영권양수도 계약을 체결한 코스닥 기업은 인스프리트, 에듀언스, 우리넷, 디케이디앤아이(이상 감사보고서 미제출), 신텍, 자티전자 등 7곳이다. 작년 3월 중 체결된 3곳(NCB네트웍스 잘만테크 케이에스씨비)에 비하면 2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이렇게 올 3월 M&A가 급증한 이유는 올해부터 외부 감사인(회계법인)이 '부적정','의견거절' 등의 이상징후를 파악하면 관련 정보를 시장에 즉시 공개해야 하기 때문인 것으로 증시전문가들은 분석했다.

감사보고서상 외부 감사인의 감사의견이 ‘감사 범위 제한으로 인한 한정(유가증권시장은 2사업연도 연속)’이거나 ‘부적정’ 또는 ‘의견거절’일 때는 상장폐지 절차가 진행된다.

또 12월 결산법인은 주총 개최일 2주일 전까지 일정을 공시하고, 주총 1주일 전까지는 감사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늦어도 사업보고서 제출 기한인 오는 30일까지는 주총을 열어야 하는 만큼 그 1주일 전인 23일이 감사보고서 제출 기한이 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M&A 전문가는 "감사보고서 제출을 앞두고 경영진이 서둘러 M&A를 시도한 것은 미확인 손실이 회계감사 도중 발견됐거나 횡령·배임, 분식회계 등의 혐의가 포착됐다는 징후일 수도 있다"며 "일단 최대주주와 대표이사 등 경영권 변동이 다급히 이뤄진 곳들은 요주의 대상"이라고 지적했다.

기업분석 임무를 맡고 있는 증권사 애널리스트 역시 "올해 기업공개(IPO) 등 신규 상장뿐 아니라 기업 회계심사가 전체적으로 강화되고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아직까지 감사보고서를 내놓지 못한 한계기업들은 경영상 문제가 발생한 것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대주주 입장에서는 '상장 프리미엄'을 받을 수 있을 때 지분과 경영권을 정리하려는 시도가 커질 수 있다고 이 애널리스트는 설명했다.

◆상장폐지 공포 '쓰나미'…21일 현재 감사보고서 미제출 376곳

최대주주의 '독단적인' 결정으로 내부 직원들은 물론 수많은 주주들의 피해까지 불러온 인스프리트의 경우 시장의 각종 의혹을 벗어나기 위해선 최우선적으로 규정 시한 이내에 감사보고서 제출이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인스프리트를 포함해 21일 현재까지 감사보고서 미제출 기업은 모두 369곳(거래소 100곳, 코스닥 269곳)에 이르며, 이 중 인스프리트 에듀언스 우리넷 디케이디앤아이 등 4곳은 3월들어 최대주주가 지분 및 경영권을 매각하기로 결정한 곳이다.

그 어느 해보다 올해 감사보고서 제출 시한에 시장의 시선이 몰리는 이유가 있다. 미제출 사유가 한국거래소 등을 통해 즉시 공개되기 때문이다. 주가 악재인 내부정보를 미리 알고 있는 일부 경영진의 '먹튀'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 고안된 조치다.

감사보고서 제출 시한(정기주총 1주일 전)은 거래소의 제출 권고 기한이기 때문에 시한을 넘기더라도 특별한 제재는 없다. 따라서 기업이 감사보고서를 늑장 공시해 감사의견 '부적정' 등 상장폐지와 관련된 정보 공개를 미루는 사례가 왕왕 발생해왔다.

거래소는 올해부터 이 시한을 지키지 않을 경우 해당법인 및 외부 감사인으로부터 감사 관련 정보를 선제적으로 수집키로 했다. 게다가 해당법인은 미제출 사유와 관련 정보에 따라 조회공시 요구 및 매매거래정지 조치도 내려진다.

한편, 자본시장법이 시행된 지난 2009년부터 최근 3년 동안 감사의견을 사유로 상장폐지된 기업 총 128곳 중 91곳(74.6%)이 감사보고서 제출 시한을 준수하지 않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 중 85곳(66.4%)은 횡령·배임, 회생절차, 부도 등 상장 폐지 전 자금과 관련된 악재가 불거진 것으로 조사됐다.

한경닷컴 정현영 기자 /이민하 기자 mina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