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앞두고 '정치인 펀드' 잇단 결성…개인이 자금 공모…위법성 논란
4월11일 총선을 앞두고 정치인 이름을 딴 펀드들이 잇달아 결성되고 있다. 정치인들이 해당 펀드를 통해 선거자금을 조달한 뒤 선거 후 일정 정도의 이자를 붙여 상환하는 방식이다. 자본시장업계에서는 금융사업자가 아닌 개인의 자금 공모와 확정 수익률 제시 등이 불법의 소지가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사실상 ‘유사 펀드 모집’

무소속의 강용석 의원은 지난 5일 자신의 이름을 딴 ‘강용석 펀드’ 투자자를 모집해 4시간 만에 2억원을 조달했다. 강기갑 통합진보당 의원도 ‘강달프 펀드’를 통해 1억8411만원의 선거자금 모집을 끝냈다.

둘다 연 6%의 수익률을 보장하고 있다. 4% 정도인 은행 1년 정기예금 금리보다 2%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대부분 해당 정치인을 후원할 목적으로 투자했지만 수익률에 이끌려 돈을 넣은 투자자도 있다.

정치인 펀드는 총선에서 득표율 15%를 넘긴 후보자에 대해서는 선거에 들어간 비용을 선거관리위원회가 보전해 주는 점을 이용했다. 원금을 선관위에서 받아 상환하고 여기에 일정 정도의 금리를 붙여주는 방식이다. 통상 선관위의 선거자금 보전이 6월 중순쯤 이뤄지는 것을 감안하면 실제 대여기간은 3개월로 이자는 1.5% 정도 되는 셈이다.

자본시장 업계에서는 이 같은 방식이 유사 펀드 모집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불특정 투자자를 대상으로 자금을 공모하는 것과 투자금에 대해 일정 수준의 수익률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업계 관계자는 “자본시장법 등에서는 자격을 갖춘 등록된 사업자에 한해 엄격한 약관심사를 통과해야 펀드를 모집할 수 있도록 돼 있다”며 “정치인이라는 이유로 개인 이름을 내건 펀드의 모집을 허용해주면 다른 변칙적인 공모펀드 사업자도 처벌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상환불능 가능성도 높아져

정치인 펀드는 유시민 통합진보당 대표가 2010년 6월 경기도지사 후보로 출마하면서 결성한 것이 시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지난해 재보선에서 ‘박원순 펀드’를 결성했다.

유력 정치인들의 선거자금 확보 수단으로 이용됐던 펀드 결성은 올 들어 다소 인지도가 낮은 정치인들로 확산되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충북 제천·단양 선거구에 출마 예정인 엄태영 새누리당 예비후보와 경기 화성갑의 홍성규 통합진보당 예비후보가 2억여원의 펀드 결성 계획을 발표했다.

정치인 펀드가 늘면서 원금 상환이 계획대로 되지 않을 위험도 커지고 있다. 통합진보당의 전신인 민주노동당이 화성갑에서 올린 역대 득표율은 8~13%다. 15% 이상 득표율을 올려야 되는 선관위의 선거자금 보전 기준을 맞추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강용석 의원을 비롯한 펀드 결성자들은 “득표율이 기준치만큼 나오지 않으면 개인 자산을 팔아 상환하겠다”고 밝혔다.

자본시장 관계자는 “자산운용업에서 펀드 모집 자격을 제한한 것은 펀드 투자자에 대한 약정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를 중요하게 판단했기 때문”이라며 “관련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정치인이 개인펀드 조성을 통해 정치자금을 모집할 경우 단순 투자자는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유관 정부부처는 서로 문제를 떠넘기고 있다. 선관위 관계자는 “정치자금법은 후원금 등을 모금하는 과정에만 적용되는 것으로 대여의 일종인 펀드자금 모집과는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박원순 펀드 조성 시점에 금융위와 함께 위법성 여부를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며 “선관위가 정치자금법 등을 통해 규율해야 할 사안”이라고 공을 넘겼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