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석유개발 프리미어리그를 뛴다
아랍에미리트(UAE)의 수도 아부다비에서 서쪽으로 270여㎞ 떨어진 브라카로 가는 길. 양쪽은 끝없는 사막이다. 그 한복판을 고속도로가 가로지르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 강한 바람에 차가 제법 흔들린다. 바람에 날린 모래가 도로 위에 쌓이면 차가 미끄러져 사고가 날 수 있다며 함께 탄 직원이 운전기사에게 천천히 달릴 것을 당부한다. 인천공항으로 가기 위해 영종대교에 올라설 때마다 바람에 차가 흔들리는 게 싫었는데 지금은 그보다 더 요동치는 차를 타고 하염없이 가야 하니 마음이 편치 않다.

광활한 모래언덕 너머로 불꽃을 내뿜고 있는 유전이 보인다. 분명 저곳에는 엑슨모빌, 셸, BP(British Petroleum), 토탈 등 다국적 석유 메이저들이 참여하고 있을 것이다. 이곳 UAE는 석유매장량 1000억배럴로 세계 6위다. 하지만 지난 70여년 동안 미국, 영국, 프랑스의 거대 석유기업들과 일본 석유회사에만 문호를 개방해 왔다. 여기에 우리나라가 다섯 번째로 이름을 올렸다. UAE 아부다비 정부는 석유 부존을 오래 전 확인했으나 미래를 위해 개발을 보류해왔던 3개 광구를 석유메이저가 아닌 한국기업들과 함께 개발키로 하고 지난 5일 정식계약을 체결했다. 30여년 만에 새로운 파트너를 맞이한 것이다.

계약서에 서명한 한국석유공사 사장은 “세계 70위 수준의 우리 석유공사가 석유 메이저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돼 기쁘다”며 “해외 자원 확보를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컨소시엄으로 함께 참여하고 있는 GS칼텍스 회장도 “석유 메이저의 그늘 아래 강 건너 불 보듯 했던 이곳에서 유전개발에 참여하게 돼 감개무량하다”고 밝혔다. 우리 기업도 이제 세계 유전개발의 프리미어리그에 당당히 참여하게 된 것이다.

달리던 차량이 휴게소로 들어간다. 되돌아오는 길에는 주유소가 없어 이곳에서 반드시 기름을 넣어야 한단다. 휴게소 이름이 ‘ADNOC(아부다비석유공사) 오아시스’다. 사막의 오아시스가 이렇게 바뀐 모양이다. 기름을 넣은 차량이 다시 고속도로로 진입한다. 도로 양쪽에 대추야자나무가 가지런히 심어져 있다. 이 나무들이 없었다면 차는 더 흔들렸을 게 분명하다.

이번에 우리가 계약한 유전은 모두 3개인데 그 중 하나는 여기에서 고속도로 왼쪽으로 200㎞ 더 들어가야 한단다. 계약서상 개발 대상은 특정유전이 아니라 그 유전을 포함한 지역전체다. 그 면적이 아부다비 전 국토의 10%에 달한다. 그러니 현재 확인된 물량 이상이 발견되면 더없이 좋은 일이다.

이날 계약은 지난해 3월 우리나라 이명박 대통령과 칼리파 UAE 대통령 간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내용에 따라 이뤄졌다. 이런 파격적인 계약이 성사된 데는 그동안 원전수주 등으로 한국기업이 얻은 신뢰는 물론, 수차례 만남을 통해 돈독해진 정상 간의 관계가 큰 힘을 발휘했다. 바쁜 일정 탓에 부득이하게 이날 계약식에 참석하지 못한 모하메드 왕세자는 관련자들을 따로 궁으로 불러 격려했다. 우리나라를 얼마나 신뢰하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난해 정상회담에서 매장량 10억배럴 이상의 기존 생산광구에 대한 한국의 우선참여도 합의된 바 있는데 이에 대한 협상도 탄력이 붙게 될 것이다.

차가 더욱 흔들린다. 주위를 둘러보니 길옆에 나무가 없다. 우리의 목적지는 사우디아라비아 국경과 가까운 브라카의 원자력발전소 건설현장이다. 2009년 프랑스와의 숨 막히는 경쟁 끝에 따낸 바로 그 한국형 원전을 건설하고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는 이 UAE 원전 수주로 단숨에 세계 6번째의 원전 수출국이 됐다. 그 역사적 현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차 흔들림에 당황하고 있는 내가 멋쩍어진다. 갑자기 흔들림이 덜해 앞을 보니 차는 거대한 원전 건설현장으로 막 들어서고 있었다.

유전과 원전으로 우리에게 한층 가까이 다가온 UAE. 그곳에서 만난 모래바람은 성가시고 불편한 바람만은 아니었다. 중동해(海)에서 대한민국호(號)의 힘찬 항해를 돕는 순풍이었다.

홍석우 < 지식경제부 장관 hongsukwoo@mke.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