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는 순간을 즐기는 심리 간과
코닥의 대표적인 광고 중 하나다. 광고의 주인공은 여성이다. 그의 역할은 가족의 추억을 기록하는 것이다. 이 광고뿐만이 아니다. 코닥의 광고에는 대부분 ‘코닥 걸(girl)’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코닥걸은 대개 아내 혹은 엄마로 등장한다. 세련되고 현대적인 이미지의 여성이지만 가족사를 기록하는 데도 충실하다.
코닥은 코닥걸을 통해 여성에겐 가족사를 기록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강조해왔다. 코닥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거실에 걸어두면 그 책임을 다할 수 있다는 얘기다. 덕분에 코닥은 여성들의 사랑을 받으며 성공했다.
그러나 이 전략이 코닥의 발목을 잡았다. 디지털 카메라가 나오면서 주요 고객층이 남성으로 바뀐 것. 남성들은 여성과 달리 사진을 인화해 간직하지 않았다. 이들은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은 뒤 한번 훑어보고 저장해 두거나 지워버린다. 코닥은 디지털 시대 남성들의 성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기존 여성 중심의 마케팅 전략을 그대로 고수, 실패를 자초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8일 이를 포함, ‘코닥이 몰락한 다섯 가지 이유’를 분석해 소개했다.
코닥의 좌절을 불러온 또 하나의 실책은 브랜드에 대한 맹신이었다. 안토니오 페레스 코닥 최고경영자(CEO)는 “앞으로 고객들은 코닥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코닥 메모리 카드에 저장하고 코닥 프린터로 인쇄하게 될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과거 브랜드파워에 대한 맹신이 변화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이는 신기술에 대한 미온적인 태도로 이어졌다. 디지털 시대가 도래했지만 코닥은 이를 무시했다. 대신 필름과 디지털의 시너지 효과라는 명분을 내걸었다. 디지털 식으로 암호화된 필름을 내놓기도 하고 포토 CD도 출시했다. ‘코닥 갤러리’란 사이트도 만들었다. 코닥 갤러리는 기존의 사진 인화 사이트와 달리 머그컵이나 쿠션 등에 사진을 새겨 판매했다.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으로 전 세계 곳곳에 깔려 있는 ‘코닥 현상소’도 아무런 소용이 없어졌다. 코닥은 코닥 현상소를 통해 사진 인화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디지털 카메라 사업을 시작한 소니 등은 현상소 없이도 시장점유율을 쉽게 빼앗아갔다. 온라인을 통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프라인의 제왕이던 코닥이 온라인 시대의 패자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