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집안 두 기업인 삼성과 CJ 그룹이 상속 재산을 두고 법정 소송에 들어갔다. 지난해 대한통운 인수를 둘러싸고 표면화됐던 양사간 해묵은 갈등이 이번 상속 분쟁으로 재연될지 결과가 주목된다.

14일 서울중앙지법에 따르면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부친인 이맹희 씨가 동생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상대로 주식 인도 소송을 제기했다. 이맹희 씨는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장남이다.

그는 "아버지가 생전에 제3자 명의로 신탁한 재산을 이건희 회장이 다른 상속인에게 알리지 않고 단독 명의로 변경한 만큼 내 상속분에 맞게 주식을 넘겨 달라"며 삼성생명 주식 824만 주와 삼성전자 주식 20주 및 1억 원을 지급하라는 주식인도 등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또 삼성에버랜드를 상대로 삼성생명보험 주식 100주와 1억 원을 청구했다.

전체 소송가액은 7138억 원으로 법무법인 화우에서 대리했다. 법원장 출신을 포함해 변호사 10명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맹희 씨는 소장에서 "삼성생명과 삼성전자 주식은 아버지 생전에 제3자 명의로 신탁한 재산이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상속인들에게 법정 상속분대로 상속됐어야 했다" 며 "아버지가 타계한 이후 이건희 회장은 명의신탁 사실을 다른 상속인에게 알리지 않고 2008년 12월 삼성생명 주식 3248만 주를 단독 명의로 변경한 만큼 내 상속분인 189분의 48에 해당하는 824만 주와 배당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이어 "삼성전자 차명주식은 일부 실명전환 사실만 확인되고 실체가 불분명해 우선 일부 청구로 보통주 10주, 우선주 10주만 인도할 것을 요구한다"고 덧붙였다. 원고 측이 주장하는 삼성전자 주식 상속분은 잠정치로 약 57만 주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맹희 씨는 또 "1998년 12월 차명주주로부터 삼성에버랜드가 매입하는 형식으로 명의를 변경한 삼성생명 주식 3447만 주도 법정상속분에 따라 반환돼야 한다" 며 "현재로선 이 부분 주식 명의변경 경위가 불분명해 삼성에버랜드를 상대로 일부인 100주만 청구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해 6월 이건희 회장 측으로부터 받은 '상속재산 분할 관련 소명' 문서에 차명재산이 언급돼 있는 것을 보고 차명재산의 존재를 알게됐다고 설명했다. 현재 이맹희 씨는 중국 베이징에 체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개인 간 소송이기 때문에 회사 측에서는 언급할 사안이 아니다" 면서도 "이미 오래전에 끝난 상속을 가지고 왜 이제와 문제를 삼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CJ 관계자 역시 "사전에 소송 건에 대해 전혀 몰랐다" 면서 "집안 일이기 때문에 따로 할 말은 없다"고 일축했다.

사실 삼성과 CJ간의 갈등은 재계에선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1993년 시작된 CJ의 계열분리 과정에서부터 크고 작은 마찰이 빚어졌다.

이맹희 씨는 당시 회고록 '묻어둔 이야기'에서 "창업 주 사망 뒤 '제일'자가 들어가는 삼성 계열사들과 안국화재를 (아들) 재현이에게 넘겨주기로 했지만 이건희 회장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썼다.

1994년에는 삼성 비서실 차장이었던 이학수 전 고문을 제일제당 대표이사 부사장으로 보내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이 전 고문은 당시 이재현 현 CJ 회장을 이사회에서 배제시키려 했지만 제일제당 측의 반대로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1995년에는 삼성에서 한남동 이건희 회장 자택 바로 옆에 있던 이재현 회장 집 정문이 보이도록 CCTV를 설치한 것이 드러나 CJ가 크게 반발하는 등 양 측의 대립이 극에 달했다. 1997년 CJ가 삼성에서 완전히 계열 분리를 끝내면서 불화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듯 보였다.

그러나 지난 해 6월 대한통운 인수 과정에서 두 집안이 부딪히며 갈등이 다시 표면화됐다. CJ가 대한통운 인수를 위해 뛰어든 가운데 삼성 계열사인 삼성SDS가 포스코와 손잡고 입찰에 참여하면서 충돌했다. CJ 측은 삼성이 자신들의 사업을 방해하려는 목적으로 인수전에 나섰다고 비난하며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재계 한 관계자는 "두 기업의 갈등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면서 "이병철 창업주가 장남 이맹희 씨가 아닌 이건희 회장에게 그룹을 물려주면서 이미 형제 관계가 멀어졌다"고 말했다.

한경닷컴 권민경 기자 k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