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값 잡아라…'돈육선물 살리기' 파격 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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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가 가격보장보험 만들고 기금펀드로 선물 거래 활성화…돼지값 폭락해도 최저가 보장
거래소, 정부와 실무협의 착수
거래소, 정부와 실무협의 착수
‘파생상품으로 돼지값 잡는다?’
한국거래소가 벼랑 끝에 선 돈육선물시장을 살리기 위해 파격 처방에 나섰다. 양돈농가를 위한 가격보장보험을 만들고, 그 기금펀드가 돈육선물 거래를 통해 돼지 최저값을 보장하겠다는 게 골자다. 파생상품의 실수요자를 발굴하는 동시에 축산물 가격도 안정시키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구상이다. 이번 ‘실험’이 성공할 경우 지수선물·옵션에 치우친국내 파생상품시장의 기형적 구조를 개선하는 데도 도움이 될 전망이다.
◆돈육선물 거래로 돼지 최저값 보장
거래소는 최근 돈육선물 활성화 방안에 대한 연구를 마치고 관계부처와 실무 협의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농협경제연구소가 거래소의 용역을 받아 작성한 ‘실물파생상품을 통한 농축산물 가격 안정화 방안 연구’ 결과의 핵심은 실수요자 발굴이다. 연간 5조원 규모에 이르는 돼지생산 농가가 돈육선물을 통해 현물가격 폭락의 위험을 헤지(회피)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돼지가 유통단계까지 다 자라는 데 6개월 정도 걸리는데, 양돈 농가로서는 이후 돼지값을 예측하기 어렵다. 이때 농가는 사육 중인 돼지에 대해 ‘농축산물 가격보장보험’에 가입한다. 보험 관련 기금펀드는 6개월 이후 거래될 돈육선물(장기월물)을 미리 정한 가격에 팔기로 계약(매도 헤지)한다. 이 경우 돼지 현물가격이 폭락해도 보험에 가입한 농가는 최저가격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된다.
송두한 농협경제연구소 연구원은 “돼지는 장내 파생상품이 있어 헤지 거래가 손쉽고 저렴하다는 점을 활용했다”며 “정부 또는 업계가 출자한 기금펀드가 농가 보험료를 지원한다면 더욱 빠르게 활성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명무실한 실물파생시장 살린다
금융상품을 통해 현물가격 예측가능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기존 농가 보전대책을 선진화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송 연구원은 “지금까지는 가축 피해에 대해 정부가 현금으로 보전하거나 일괄 수매하는 등 단발적 대책이 많았다”며 “하지만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와 자유무역협정(FTA) 확대로 선심성 대책은 설 자리를 잃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농가가 사육두수에 대해 보험을 들어놓으면 ‘소값 파동’ 때처럼 가축을 죽을 때까지 방치하는 상황도 예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거래소에 있어 이번 대책은 ‘국내 실물파생상품의 위기’를 극복할 비장의 무기이기도 하다. 실물파생상품은 현물가격 급변의 위험을 헤지한다는 측면에서 가장 기본적인 금융상품이다. 해외 파생상품시장에서 실물파생상품 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13% 정도지만, 국내는 0.03%에 그친다. 코스피200선물·옵션에 거래 대부분이 편중돼 있기 때문이다.
상품 역시 국내에선 금선물(미니금선물 포함)과 돈육선물 두 가지뿐이다. 지난달 돈육선물 거래금액은 하루평균 100만원에 불과했다. 거래소 관계자는 “돈육선물 활성화가 전제되지 않고서는 옥수수선물, 석유선물 등 다른 실물파생상품 도입도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헤지거래와 투기거래 동시 들어와야
이번 방안을 실현하려면 극복할 장애물도 적지 않다. 장기월물을 주로 거래해야 하는데, 지금은 거래가 없어 호가 자체가 형성되기 어렵다. 돈육을 직접 취급하지 않으면서도 가격 흐름에 베팅하는 일반투자자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거래소는 지수선물옵션 투자자가 옮겨올 수 있도록 거래단위를 1000㎏에서 100㎏으로 줄이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 실수요자 참여가 본격화하면 실물인수도 방식으로 전환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정부의 정책적 지원도 필요하다. 송 연구원은 “현재 농가의 70%가 가입한 가축재해보험의 경우 보험료의 50% 이상을 정부가 국고로 지원하고 있다”며 “선물시장의 돈육대표가격과 정부의 기준가격을 통일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