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다시 일어선다. 세계가 우리 엔진의 굉음을 듣게 될 것이다.”

지난 5일 전 세계 1억2000만명이 시청한 아메리칸 풋볼 결승전인 ‘슈퍼볼’. 경기 중간에 방영된 미국 크라이슬러 자동차 광고에 출연한 81세의 영화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던진 말이다. 그는 “자, 이제 후반전이 시작된다”며 크라이슬러가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했다. 미국 제조업이 부활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라 이 광고의 메시지는 매우 강렬하게 느껴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전반전은 구조조정기

크라이슬러 부활 시동…美 제조업 '희망의 싹'이 트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크라이슬러 자동차의 슈퍼볼 TV 광고 메시지는 미국 제조업에 희망의 불꽃이 타고 있다는 것을 압축해 표현했다고 12일 분석했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로 크라이슬러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2009년 연방정부로부터 구제금융을 받는 조건으로 파산보호에 들어갔다. 이 기간 회사 인력의 4분의 1이 해고됐고, 2006년 22만5000대에 달하던 연간 자동차 생산량은 6만대로 쪼그라들었다. 2010년에는 이탈리아 자동차회사인 피아트가 지분 58.5%를 매입하면서 크라이슬러의 최대주주가 됐다.

크라이슬러는 부실한 실적을 내는 공장을 폐쇄하고 딜러 판매망을 재조정하는 등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신입 직원 급여를 구제금융을 받기 전의 절반 수준으로 낮췄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은 효과를 냈다. 2010년 6억5200만달러 적자를 낸 크라이슬러는 지난해 1억8300만달러 흑자를 낸 데 이어 올해는 15억달러 흑자를 낼 것으로 전망했다. 자동차시장 수요가 증가세를 타고 있는 덕분에 올해 생산 목표량도 28만대로 늘려 잡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크라이슬러가 JP모건체이스 등과 할부금융사 합작법인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자동차 판매량이 다시 늘어나자 공격적인 영업시스템을 갖추기로 한 것이다.

◆지속적인 성장이 과제

크라이슬러는 구조조정기인 ‘전반전’을 연방정부의 지원에 의존해 연명했다. 그러나 진짜 승부가 벌어지는 후반전은 자생력에 의존해야 한다. 지난해의 몇 배에 달하는 순이익을 내야 미래 신차 개발에 충분히 투자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신차 개발비는 공장 신설, 직원 훈련 등에 대한 투자비와 별개로 10억달러 정도가 필요할 것으로 추정된다. 세르조 마르키온네 최고경영자(CEO)도 “요즈음 자동차회사가 재무적으로 생존하려면 최소한 연간 600만대는 팔아야 한다”며 “하지만 피아트와 크라이슬러의 판매량은 다 합해야 400만대를 조금 넘는다”고 토로했다.

게다가 유로존 재정위기는 아직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위기가 깊어지면 자동차 소비시장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미국 정부와 의회가 이번 달에 만료되는 소득세 감세정책을 연장하는 데 합의하지 못해도 자동차 판매는 줄어들 전망이다.

FT는 미국의 많은 제조업체들이 금융위기 이후 크라이슬러와 같은 체질 개선을 거쳐 부활하고 있다고 전했다. 2010년 1월부터 지난 1월까지 제조업 부문은 40만명의 일자리를 만들어냈다. FT는 “글로벌 산업환경으로 볼 때 과거의 명성만을 가지고 경쟁력을 인정받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크라이슬러로 대표되는 미국 제조업이 과거의 명성을 회복할 것인지는 더 두고봐야 한다고 FT는 진단했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