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애플, 작심하고 낸 소송서 모두 '쓴맛'…'확전-화해' 기로
풍부한 특허기술을 앞세운 삼성전자의 1차 공세가 무위로 돌아갔다. 패소했더라면 향후 당장 특허료 지불부담을 떠안는 것은 물론 특허전쟁 전체에서 비세에 놓일 뻔했던 애플은 일단 한숨을 돌렸다.

애플도 고대하던 승리를 가져가지 못했다. 독일 만하임 지방법원은 2일 양측의 제소를 모두 기각하면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려놓았다.

이번 판결은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 전쟁에서 처음으로 내려진 본안 소송 판결이다. 그만큼 다른 재판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업계는 삼성전자의 주무기인 표준 통신 기술과 애플의 주무기인 UI(유저인터페이스) 모두 무력화되면서 양사의 특허전쟁이 장기 교착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 “즉각 항소”

삼성전자는 자사가 보유한 표준 통신 기술을 애플이 정당한 로열티를 지불하지 않고 무단으로 사용했다고 주장해왔다. 애플은 이에 대해 “통신용 반도체 제조업체들이 삼성전자로부터 라이선스를 취득했기 때문에 별도 로열티를 낼 필요가 없는 데다 삼성전자가 협상을 요구하며 기기 가격의 2.4%라는 과도한 로열티까지 요구했다”며 반박해왔다. 누구나 합리적인 대가를 내면 표준 기술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프랜드(FRAND)’ 원칙이 계속 쟁점이 되었던 이유다.

이 때문에 만하임 지방법원 재판부가 무엇을 근거로 삼성전자의 제소를 기각했는지가 중요하다.

재판부는 이날 “삼성전자가 문제 삼은 암호화 기술은 데이터 전송 과정의 일부에만 적용되는 것으로 애플 측이 이를 무단으로 사용했다고 볼 근거가 희박하다”고 판결했다. 애플이 자체적으로 설계·주문한 통신용 반도체에 삼성전자의 기술을 쓰지 않았다는 얘기다.

하지만 국내업계 관계자는 “순전히 기술적인 문제인 만큼 삼성은 다른 통신 특허를 이용해서 애플을 재차 공격할 수 있다”며 “삼성이 이번에 큰 타격을 받았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설명했다.

신종균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사장도 최근 “회사의 모든 특허 관련 역량을 동원해 우리 비즈니스를 보호할 것”이라고 말하는 등 강경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바로 독일 고등법원에 항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애플 공세도 위력 없어

애플의 공격도 별다른 전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번 패소 판결처럼 대부분의 UI 특허가 법원 측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반면 삼성전자는 겉으로는 비슷해 보일지 모르지만 구체적인 구동 알고리즘은 애플 제품과 확연히 다르다는 논리로 방어에 성공하고 있다. 이날 만하임 지방법원 재판부는 “삼성 제품은 애플이 주장한 화면 표시 방식대로 구동되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삼성전자 모토로라 등은 최근 패소 가능성이 높은 UI의 경우 아예 구동 방식을 바꿔 판매 금지를 피해가고 있다. 애플은 지난 1일 뮌헨 지방법원에서 모토로라가 사진을 크게 키워서 보는 ‘줌 인(Zoom-in)’ UI를 무단으로 사용했다는 판결을 얻어냈지만, 모토로라가 즉각 이를 수정한 탓에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업계 관계자는 “구글은 포토 플리킹 등 애플이 문제삼은 UI에 대해 구동 방식을 바꿔 후방에서 휴대폰 업체들을 지원하고 있다”며 “특허 전쟁이 발발한 이후 출시된 아이스크림샌드위치 운영체제(OS)의 경우 애플의 공격을 피할 ‘회피 기술’이 광범위하게 쓰였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화해 가능성은

전방위 특허전쟁의 최대 승부처로 떠올랐던 독일 재판에서 삼성과 애플 모두 승점을 올리는 데 실패하면서 업계 일각에서는 양측의 화해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양사가 끝까지 사생결단식으로 싸우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데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부품부문의 협력관계도 서로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반복되는 소송에도 가시적인 이득을 얻기가 어렵게 돼 있는 상황도 큰 부담이다. 업계는 양사가 이제 서로에게 치명상을 입히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정세판단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조귀동 기자 claymo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