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위기의 여파로 증권예탁 잔고에서도 중산층의 비중이 위축되는 '쪼그라든 중산층'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이는 2009년 이후 증권사들의 고객예탁자산 중 1억원 이상 보유자의 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늘어난 반면, 1억원 미만 보유자의 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줄어든 데서 확인된다.

이 기간 1억원 이상 보유자수와 1억원 미만 보유자수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 주식ㆍ채권 수익도 양극화

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증권사들은 고객들을 맡긴 돈에 따라 3천만원 미만, 3천만~1억원, 1억원 이상 고객으로 분류해 관리한다.

자산 1억원 고객은 '고액자산가'로 분류돼 전담 프라이빗뱅커(PB)가 배정되는 등 특별관리를 받는다.

자산 3천만~1억원 고객은 지점에서 관리한다.

자산 3천만원 이하 고객은 '대중(mass)'으로 분류해 콜센터에서 관리한다.

이메일 대량발송 등을 통해 주로 주식종목 정보를 제공한다.

정부의 2011년 가계금융조사 결과에 따르면 작년 3월말 기준 우리나라 가구당 평균 금융자산은 6천903만원, 금융부채는 3천597만원이다.

금융자산 보유가구 중 중위가구의 금융자산은 3천282만원이다.

금융자산이 3천만원 이상 1억원 이하면, 금융자산가 중에는 '중산층'인 것이다.

그런데 글로벌 경제위기를 거친 2009년말에 비해 작년 말 증권사에 맡겨진 중산층 이하의 주식ㆍ채권자산은 줄어든 반면, 고액자산가는 늘었다.

미래에셋증권의 3천만원 미만 고객의 자산비중은 21.1%에서 16.1%로, 3천만원 이상 1억원 미만의 고객의 자산비중은 22.5%에서 20.4%로 각각 감소했다.

반면, 1억원 이상 고객의 자산비중은 56.4%에서 63.5%로 늘었다.

같은 기간 자산수준별 고객수는 0.8%포인트 안에서 오르내려 거의 변화가 없었다.

우리투자증권의 같은 기간 3천만 미만 고객의 자산비중은 7.3%에서 6.4%로, 3천만원~1억원은 10.4%에서 9.9%로 각각 줄어든 반면, 1억원 이상 고객의 자산비중은 82.3%에서 83.7%로 상승했다.

자본시장연구원 이인형 자본시장실장은 "1억원 이상 고액자산가들과 1억원 미만 투자자들 사이에는 자산운용 포트폴리오에 차이가 있다.

변동성 장세에는 고액자산가들은 포트폴리오를 다양하게 해 안정적 수익을 추구할 수 있어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쪼그라든 중산층…투자도 불리

1억원 이하 '중산층' 투자자 자산 비중이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감소한 것은 `쪼그라든 중산층(Squeezed Middle)' 현상과 맥락을 같이한다.

쪼그라든 중산층은 영국 노동당 대표 에드 밀리밴드가 작년 초 처음 사용한 용어다.

물가상승과 임금 동결로 고통받는 중산층의 모습을 표현했다.

옥스퍼드 영어사전 편집진은 작년 말 이 단어를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다.

한국 중산층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빚 때문에 쪼들리고 있다.

가계금융조사에 따르면 작년 3월말 현재 전체가구의 자산총액은 재작년보다 7.5% 증가했지만 부채총액은 12.7% 늘었다.

특히 중간소득 계층의 부채 증가 폭은 최고 18%에 달했다.

부채가 늘면서 작년 월소득 300만원 이상의 중산층 가운데 워크아웃을 신청한 건수가 재작년 대비 27% 폭증했다.

예비 워크아웃 신청자 수는 40% 이상 늘었다.

중산층은 이 와중에 금융자산 불리기에도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삼성증권 박경희 상무는 "자산이 1억원 미만인 고객은 기대수익률이 높아 위험을 많이 지고 주식 직접투자 등의 방식으로 자산운용을 한다.

따라서 시간이 지나면 수익률이 떨어진다.

반면, 자산이 1억원 이상인 고객은 자산배분을 통해 위험관리를 해 성과가 더 좋다"고 말했다.

그는 "중산층의 자산비중이 떨어지는 데는 부동산 가격 하락에 따른 가처분소득 감소, 대출이자 부담, 물가상승에 따른 투자여력 감소한 데 따른 영향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리투자증권 서동필 연구위원은 "소액투자자들은 주식이나 펀드를 운용할 때 개별종목이나 특정펀드에 집중한다.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크면 대부분 큰 손실을 볼 수밖에 없다.

특히 3천만원 미만 투자자들은 자산배분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위기 이후 물가상승과, 고용불안, 가계부채 증가, 아파트 가격 하락 등으로 중하위 투자자들이 위축된 원인이라고 덧붙였다.

현대경제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1990년부터 작년까지 20년간 1인당 명목 국내총생산(GDP)는 6천303달러에서 2만165달러로 3배 이상 늘었지만, 중산층 비율은 75.4%에서 67.5%로 7.9%포인트 감소했다.

중산층을 중위소득의 50%이상 150% 가구로 분류하는 경제협력기구(OECD)의 기준을 토대로 산출했다.

◇ 고액자산가, 포트폴리오로 위기 극복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변동성 심한 증시에서 고액자산가들이 상대적으로 안정된 수익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포트폴리오의 힘이다.

이들은 분산투자로 위험을 줄이고 수익을 극대화했다.

그러나 1억원 미만 투자자들은 위기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해 타격을 입었다.

투자자를 보유자산 1억원 이상과 미만으로 나눠 2007년 말 이후 투자 행태를 보면 두 집단 간에 뚜렷한 차이가 나타난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작년 연말 기준 자산이 1억원 이상인 고객은 주식투자 비율이 55%로 가장 많았고, 복합상품이 29.3%를 차지했다.

이어 머니마켓펀드(MMFㆍ6.7%), 채권(4.4%), 펀드(3.7%) 순으로 나타났다.

이들 고액자산가를 2007년 말과 비교하면 글로벌 금융위기로 펀드투자 고객이 무려 11.1%포인트 줄었고, 서로 다른 자산에 분산투자하는 복합상품고객이 크게 늘었다.

저금리 기조에 채권투자 고객 비중이 커진 것도 눈에 띈다.

자산 1억원 미만 투자자는 복합상품의 비중이 13.9%에 그쳤다.

펀드 비중은 2007년말 17.0%에서 13.8%로 다소 줄었지만 여전히 높았다.

채권투자는 2.0%에서 1.5%로 오히려 줄었다.

삼성증권 조완제 투자컨설팅팀장은 "고액자산가들은 더 다양한 투자 수단을 선택하고 위험을 방어할 수 있다.

자산이 적으면 지나치게 공격적이거나 예금 등 안전자산에만 투자한다.

부자들은 위험자산과 안전자산에 분산투자해 수익을 얻는다"고 말했다.

최근 금융업계는 `VVIP' 고객 잡기에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기존 PB(프라이빗뱅커) 영업은 현금자산 5억원 이상 고객을 대상으로 했지만 VVIP 마케팅은 자산이 최소 30억원 이상의 초부유층이 대상이다.

삼성증권이 작년 연말 기준 보유자산 30억원 이상 고객의 포트폴리오를 분석한 결과 국내 주식 직접 투자와 종합자산관리계좌(CMA) 등 현금성 자산을 제외하면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국채 투자금액 비중이 42.1%로 가장 컸다.

이어 외국 주식(19.1%), 펀드(9.8%), 특정금전신탁(8.1%), 외국채권(6.7%) 등이었다.

국채를 비롯해 유전펀드, 브라질 채권 등 절세 상품 비중이 높았다.

국채에서는 10년 이상 장기채권 비중이 99.4%를 차지했다.

외국 자산으로 포트폴리오를 확대한 점도 특징이다.

(서울연합뉴스) 김재홍 이 율 강종훈 기자 jaehong@yna.co.kryulsid@yna.co.krdoubl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