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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요인터뷰] "역동적인 한국 정치·남북관계는 '끝나지 않는' 주말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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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재단 한국지부 대표 피터 벡

    '김정은 체제' 한 달
    '통미봉남'은 북한식 사대주의…개혁·개방이 가장 큰 딜레마일 듯

    5년 만에 돌아온 '한국통'
    개도국에 한국 발전 경험 알릴 것…대북지원사업 위해 평양 방문 추진

    25년간의 서울 사랑
    전통·현대 조화 이룬 강북 매력적…무당 만나고 템플스테이 해보고 싶어
    [월요인터뷰] "역동적인 한국 정치·남북관계는 '끝나지 않는' 주말드라마"
    “1987년 우연히 찾은 한국은 역동의 현장이었다.”

    치열한 민주화 항쟁, 산업시설들이 뿜어내는 경제발전의 기운, 하회마을의 고즈넉함은 스무 살 미국 청년을 매혹시켰다. 대학 시절 항공사 직원인 어머니 덕에 공짜여행의 기회가 많았다. 어머니의 퇴직을 앞두고 마지막 배낭여행 장소로 택한 곳이 한국이었다. “동남아시아는 위험하니 동북아시아를 가보라”는 가족의 조언 때문이었다. 그 이전까지 한국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던 이 청년은 이후 다섯 번에 걸쳐 총 7년을 한국에서 보냈다. 그 주인공이 미국과 아시아를 잇는 아시아재단의 한국지부 대표로 돌아온 피터 벡(45)이다. 그를 최근 서울 인사동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아시아재단 한국지부 역할은 무엇인가요.

    “한국지부는 아시아 개발국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사무소입니다. 아시아재단은 현재 한국개발연구원(KDI),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함께 한국의 개발경험을 공유하는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3월에는 인도 뉴델리에서 중국, 인도, 태국, 인도네시아 관계자와 함께 한국의 새마을운동 경험을 나누는 자리를 가질 예정입니다. 대표 임기 3년 동안 한국의 발전 경험을 알려 한국이 글로벌 플레이어로 자리잡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할 생각입니다.”

    아시아재단 한국지부는 1954년 개소했다. 아시아 국가의 개발, 아시아와 미국의 관계 향상을 목표로 하는 비영리재단이다. 한국전쟁 직후 신문용지와 서적용지를 지원, 교재 제작을 돕는 등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5년 만에 돌아왔는데요.

    “청계천 등의 변화가 인상적입니다. 특히 서울 북촌을 처음 알았는데 놀랍더군요. 서울은 북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입니다.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고 있죠. 운좋게도 이번에 일하게 된 아시아재단은 인사동에 사무실이 있고 집은 종로구 옥인동에 구했습니다. 강북의 아름다운 풍경을 매일 접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한국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죠. 한국인들은 주요 20개국(G20)정상회의 개최를 중요하게 여기는데 저는 지난해 11월 부산에서 열린 원조개발총회에 더 큰 의미를 둡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공적개발원조(ODA) 규모를 두 배로 늘리기로 하는 등 과감한 계획을 추진하는 것을 높이 평가합니다. 한국이 국제개발협력에서 주도국으로서 아시아의 발전에 의미있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한국 관련 일을 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말리지 않았습니까.

    “어머니가 한국을 방문해보신 적이 있고 ‘아름다운 곳’으로 기억하고 있어서 큰 반대는 없었습니다. 당시 국제정치의 주류는 일본이었지만 한국의 역동성이 정말 매력적이었습니다. 한국을 선택한 것을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왜 옥인동을 선택하셨습니까.

    “원래는 북촌에 집을 구하고 싶었어요. 아내는 분당, 판교의 멋진 아파트에 살고 싶어했지만 전 강북이 좋아요. 고궁, 산, 한국 특유의 분위기가 있으니까요. 옥인동의 다른 이름은 ‘서촌’입니다. 아직 ‘머리깎기’라는 이발소 간판이 남아 있을 정도로 옛 서울의 모습이 많이 간직돼 있는 곳이지요. 집에 들어설 때 허리를 숙여야 하고 자칫 이마를 찧는 불편함이 있긴 하지만 ‘진짜 집’에 사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그는 현재 인왕산 자락에 있는 옥인동 단독주택에서 ‘기러기 아빠’로 지내고 있다. 한국인 부인과 외동딸은 오는 6월 학기를 마치고 한국으로 올 예정이다. 벡 대표는 올해 열 살이 된 딸 줄리아(한국이름 애리)의 사진을 보여주며 ‘살림 밑천’이라는 자랑도 잊지 않았다.

    ▶딸은 자연스레 한국 전문가가 될 듯합니다.

    “우리 가족은 집에서 한국어를 씁니다. 제 딸 역시 한국어를 잘하지만 아직 부족함이 있죠. 한국 학교에 보내 한국 사회를 깊이 있게 경험하는 기회를 주고 싶었지만 치열한 경쟁, 학교 내 ‘왕따’를 걱정하는 아내를 설득하지 못해 외국인 학교에 보내기로 했습니다. 미국에는 한국을 진짜 경험해보고 이해하는 전문가가 정말 부족하죠. 한국 전문가지만 한국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사람이 태반입니다. 최근 30~40대 한국계 미국인들이 한국 연구에 나선다는 점은 고무적입니다. ”

    ▶한국 우표 전문가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에서 한국 우표를 수집하는 것은 숨바꼭질 같아요. 우표 딜러들이 어디 있는지, 언제 만날지 알 수 없죠. 미국에는 구한말 선교사들이 보낸 우표들이 많이 있는데, 인터넷 덕분에 이전보다 찾기 쉬워졌지만 가격은 더 올랐습니다. 저는 구글을 비롯한 여러 회사에 투자했지만 가장 성공한 투자는 한국 우표였어요. 경성, 한성, 진주 등 당시 지명이 찍힌 소인이 있는 우표는 하나에 1000달러가 넘어갑니다. 지금은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잠시 접고 있습니다.”

    ▶한국통으로 어떤 경험을 원하십니까.

    “한국의 역동성은 끝없이 저를 매혹시킵니다. 제 아내와 딸은 한국의 드라마를 좋아하는데 저는 보지 않습니다. 저에게는 한국 정치와 정책, 남북관계가 ‘끝나지 않는 주말연속극’이거든요. 일본에서는 절대 기대할 수 없는 역동성이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한국과 남북관계 관련 일을 하는 것을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

    ▶대북지원사업도 진행하고 있지요.

    “북한의 전문가들을 미국에 초청해 민간 차원의 대화를 지원하고 김일성종합대학 등 주요 대학에 과학·기술·경영 등 비정치 분야에 대한 책을 매년 1만권씩 보내고 있는데 10% 정도 확대할 계획입니다. 김정은 체제가 우리의 사업에 협력하길 바랍니다. 이 사업의 진행 상황과 성과를 점검하기 위해 평양 방문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북한을 아시아 개발협력 프로그램에 포함시키는 것이 가장 큰 꿈입니다.”

    ▶김정은 체제 한 달을 어떻게 평가하나요.

    “권력 이양이 적절한 방식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매우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봅니다. 북한은 국가보위부, 인민무력부 등을 통한 강력한 주민통제 시스템을 갖고 있고 김정은도 후계자로서 2년간 준비를 했습니다. 새 지도자 나이가 어리고 경력이 부족한 점은 분명한 리스크이지만 북한 체제에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질 것으로는 보지 않습니다.”

    ▶김정은이 개혁·개방에 나설 가능성은.

    “개혁·개방은 김정은이 갖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딜레마일 겁니다. 경제는 김정은에게 가장 큰 과제입니다. 올해 강성대국의 문을 연다고 했지만 아직 성과를 내놓지 못했지요. 개방은 그가 생존하고 북한이 번영하기 위한 유일한 길이지만 체제에 큰 위협이 됩니다. ”

    ▶북한이 남한과 대화는 거부하면서 미국과 대화 의지는 분명합니다.

    “통미봉남(미국과 대화하고 남한을 배제하는 북한의 대외전략)은 북한식의 사대주의입니다. 북한의 새 지도부에게 가장 위험한 나라는 한국입니다. 왜냐하면 같은 민족이고, 북한 체제를 대체할 수 있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내년 남한에 들어설 새 정권은 북한에 있어 큰 도전요소가 될 겁니다. 현금이 필요한 북한으로서는 남북관계를 지금처럼 끌고가면 매우 불편해지니까요.”

    ▶미국 내에서 김정은 체제에 대한 평가는 어떤가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이번 신년연설에서 북한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실망스러웠습니다. 이란 이슈에 밀려 북한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에 대해 수동적으로 접근해왔는데 보다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합니다. 김정일 위원장 사망으로 북·미 간 영양지원과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협상이 중단됐는데 빨리 재개해야 합니다.”

    ▶이번에 한국에서 꼭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지리산을 오르고 싶어요. 한국의 모든 국립공원을 가보는 것이 목표였는데 지리산은 아직 가보지 못해 꼭 가보고 싶습니다. 독도도 방문해보고 싶습니다. 몇 번 시도했지만 날씨 때문에 성사되지 못했거든요. 그리고 무당을 만나고 템플스테이도 해보고 싶군요.”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 피터 벡 대표는…

    피터 벡 아시아재단 한국지부 대표는 미국 내 대표적인 ‘한국통’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출신으로 1987년 UC버클리 재학 중 한국으로 온 배낭여행이 그의 인생을 바꾸어놓았다. 이듬해 다시 서울을 찾아 연세대, 서울대, 한국외국어대 등에서 한국어와 한국을 배웠고 1994년부터 2년간 외교통상부와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서 통역을 하기도 했다. 부인은 영어강사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만난 한국인이다.

    그의 관심은 한국 정치, 개발경험, 남북관계 등 다양하다. 그는 2007년 국제위기그룹 서울사무소 대표를 마치고 한국을 떠난 뒤 이번에 돌아오기까지 ‘벡 삿갓’으로 지냈다. 한군데 정착하지 못한 채 미국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 연구원, 일본 게이오대 방문연구원 등 여러 곳을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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