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기가 기회…구조조정 없다
- '중위험·중수익' 상품이 관건…지수형 ELS가 투자대안

"불황의 그늘이 길어질 전망입니다. 하지만 이번 위기를 극복한다면 마켓리더로서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어려울수록 멀리 내다보고 투자에 나서야 한다는 점은 변함없는 투자원칙입니다."

[증권사 CEO에게 길을 묻다①]유상호 한국證 사장 "위기가 기회…구조조정은 없다"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한국투자증권 본사에서 <한경닷컴> 기자를 만난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은 다소 지쳐보였다. 새해를 맞아 끝없이 이어지는 일정 속에서 겨우 짬을 낸 참이었다. 그러나 유럽 재정위기와 세계 경기침체란 파고를 이겨낼 한 해 전략에 대해 묻자 '전설의 제임스'란 그의 별명답게 금세 철두철미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금융투자업계는 흑룡의 해인 임진년(壬辰年) 들어서도 녹록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유럽 재정위기 사태의 해결은 지지부진하고,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세계적으로 대선을 앞두고 불확실성이 산재해 있다.

유 사장은 임진년이 위기와 기회가 상존하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전망이라며 다양한 '중위험·중수익' 상품을 출시해 투자자들의 요구에 부응하겠다는 전략을 제시했다.

◆ "1등을 넘어선 '절대 강자'가 목표"

유 사장은 올해 한국투자증권이 순이익 1위란 성과를 넘어, 주요 영업분야에서 1위를 달성해 증권업계에서 인정하는 마켓리더가 될 것이란 포부를 밝혔다. 이에 ''Beyond No.1(1등을 넘어)'이란 슬로건을 제시했다.

그는 "선진국의 경기성장동력이 꺼져있는 상황에서 중국 경기의 연착륙 여부도 지켜봐야 하고, 유럽 재정위기 사태 역시 전망이 불투명하다"면서 "올해 증시는 전반적으로 답답한 한 해가 되겠지만 닥친 위기를 기회로 삼아 경쟁력을 한층 더 강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는 시장의 변동성이 높을 전망이기 때문에 고객의 손실을 일정 수준에서 제한하면서 적정 수익을 추구하는 다양한 '중위험·중수익' 상품과 우수한 종합금융서비스를 제공해 개인고객 기반을 더욱 견고하게 강화시킬 것이란 계획이다.

이에 중점 추진 방안으로는 리테일 고객 기반 강화와, 다양한 상품개발 역량 확충, 시너지 제고를 통한 신규 수익원 발굴 등을 제시했다.

한국투자증권은 대기업집단과 은행 계열 증권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2011년 회계연도 상반기(4~9월) 국제회계기준(IFRS)을 적용한 지배주주지분 순이익 업계 1위(1162억원)를 달성한 바 있다.

이는 위탁수수료에 의존하던 기존 구조를 다양한 분야의 수수료 중심으로 다변화시킨 덕이란 설명이다. 특히 자산관리 및 증권중개 수수료, 인수 및 주선 수수료 등 증권사 핵심사업에서 벌어들이는 수수료 수입이 전체 일반관리비를 웃도는 유일한 대형증권사다.

또한 지금까지와 같이 구조조정도 시행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오히려 그동안 낭비 요소가 없었던 만큼 불황 이후 다가올 호황에 대비해 신입사원을 뽑아 키울 준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유 사장은 "증권업계의 경우 64개 증권사가 완전경쟁 체제에 돌입하면서 수수료가 마지노선까지 인하됐지만 한국투자증권은 높은 생산성에 힘입어 수수료 수입이 일반관리비를 웃도는 거의 유일한 증권사가 됐다"며 "통상 신입사원은 2∼3년정도 키워야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만큼 불황기 이후를 대비하기 위해 연말부터 신규 채용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증권업계에서 확산되고 있는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셈이다.

그는 "최근 안티(anti·反) 금융 기조와 금융감독 당국의 규제 강화 등이 대두되고 있는데 엄격한 리스크관리와 정도영업으로 잘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막 오른 한국형 헤지펀드 시장…후원자 될 것

한국투자증권은 작년 10월 31일 증자를 통해 국내 증권사 처음으로 자기자본 3조원을 달성, 대형 투자은행(IB) 지정 요건을 갖췄다.

아직 한국형 헤지펀드는 트랙레코드(실적)가 없기 때문에 국내 기관 및 일반 투자가의 투자가 활성화되기는 이른 시점이지만 올 한 해 어떤 성과를 내는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유 사장은 내다봤다.

이에 한국투자증권이 올해 본격적으로 파종 단계에 들어선 한국형 헤지펀드 시장의 후원자가 될 것이란 계획이다.

유 사장은 "통상 해외 헤지펀드들은 1년 12개월 중 10개월 이상 플러스(+) 수익을 내는 2년을 거쳐야 자금이 유입된다"며 "올 한 해 프라임브로커로서 한국형 헤지펀드 운용사가 우수한 실적을 쌓아 국내 투자가들의 관심을 끌 수 있도록 돕는 후견인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는 운용사 중심의 헤지펀드 운용자와 계열금융기관 중심의 투자자가 주축이 된 상태지만 이후 운용자와 투자자 풀이 점차 확대된다면 헤지펀드가 향후 자산운용업의 핵심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따라서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프라임브로커 사업을 한국투자증권의 미래 신성장동력으로 키워갈 것이란 청사진을 내놨다.

한국투자증권은 지주사 한국금융지주의 계열사 한국투자신탁운용, 싱가포르 현지법인으로 설립한 KIARA와 함께 3년 전부터 헤지펀드 운용, 판매, 전담중개를 위한 노하우를 축적하며 시너지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그는 "장기적으로 헤지펀드 시장의 덩치가 몇십조 단위로 불어난다면 프라임브로커 사업 역시 증권사의 중요한 수입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대외변수 불안…아시아 시장서 기반 다져야"

대외 불확실성이 한층 가중되면서 이탈리아 국채 만기가 대거 돌아오는 시기인 2∼4월 위기설이 대두되는 등 세계 경제가 뒤숭숭한 분위기다.

금융투자업계 최고의 국제통으로 손꼽히는 유 사장이 제시한 한국투자증권의 해외 전략은 어떨까.

한국투자증권은 '아시아 금융실크로드' 구축을 모토로 삼고 아시아 해외 시장에 초점을 맞춘 전략을 펼치고 있다.

올해는 그동안 진출한 신흥국(이머징) 시장에서 보다 탄탄한 입지를 구축하기 위해 거점 확보와 현지화를 위한 비즈니스 모델 건설에 힘 쓸 계획이다.

중국의 경우 2010년 11월 베이징에 설립한 전요우(眞友)투자자문사와 연계해 중국기업 기업공개(IPO)를 비롯한 투자은행(IB) 업무와 QDII(적격국내기관투자자), QFII(적격외국기관투자가) 관련 사업을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베트남에선 2010년 12월 현지 증권사 EPS증권을 인수한 현지법인 'KIS Vietnam'의 경영 안정화를 통해 2015년까지 베트남 5대 증권사로 성장해 나갈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겠다고 전했다.

한편 무산된 이슬람 채권 스쿠크(sukuk)에 대해선 아쉬움을 표했다.

유 사장은 "현 시점에서 풍부한 외환보유액을 갖춘 곳은 오일머니를 보유한 산유국과 중국, 일본 세 곳"이라며 "스쿠크는 순수하게 경제적인 시각에선 한국이 상대적으로 저금리로 장기 자금을 조달할 수 있어 유리한 수단이었는데 무산돼 아쉽다"고 설명했다.

◆ '중위험·중수익' 상품이 관건…"지수형 ELS가 답"

지난해부터 대외변수 불안과 함께 변동성 장세가 이어지면서 투자가들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이에 올 한 해는 '중위험·중수익' 상품을 얼마나 잘 내놓는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유 사장은 예상했다.

550만명에 달하는 베이비붐 세대가 지난해부터 정년퇴직 연령에 들어서면서 '적절한 리스크와 합리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상품들에 대한 요구가 커질 것이란 전망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주요 금융상품군의 성향이 '고위험-고수익', '저위험-저수익'에만 몰려 있어 '중위험·중수익' 상품에는 다소의 공백이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한국투자증권은 이를 메울 수 있는 다양한 상품을 출시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전했다.

현 시점에서 이 같은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상품은 코스피지수 등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설정한 지수형 주가연계증권(ELS)이 가장 적절하다고 유 사장은 진단했다.

그는 "지난해 하반기 증시 급락 구간에서 일부 투스탁(two stock) 종목형 ELS 상품들이 녹인(knock-in) 구간에 빠져 ELS에 대한 투자가들의 경계심이 높아졌지만 지수형 ELS는 상대적으로 안정성이 높다"며 "시중금리가 3%대인 현 시점에선 10%대 수익을 추구하는 지수형 ELS의 메리트가 부각될 수 있는 구간"이라고 강조했다.

헤지펀드가 개인투자가들에 널리 확산되기까지는 금액 등의 측면에서 시간이 좀 더 필요하기 때문에 지수형 ELS가 당분간 적절한 투자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다.

◆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은?

유 사장은 연세대 경영학과와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한 후 1988년 대우증권 국제부를 통해 증권업계에 발을 들였다. 2002년 홀세일(wholesale) 및 IB 본부장으로 한국투자증권(당시 동원증권)으로 옮긴 후 2007년 사장으로 부임, 대형사 최연소 CEO(최고경영자)가 됐다. 하루 전체 주식시장 거래량의 5%를 혼자 매매한 신기록을 세워 '전설의 제임스(Legendary James)'란 별명을 얻었고, 증권업계의 대표적인 국제통으로 손꼽힌다.

한경닷컴 오정민 기자 bloom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