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가 정부의 정책에 제동을 걸면서 정부 부처가 긴장하고 있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여당의 지도부인 비대위가 반대하면 현실적으로 정책을 추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KTX 노선에 경쟁체제를 도입하겠다는 국토해양부의 정책을 공개적으로 반대한 것이다. 비대위의 이 같은 행보는 현 정부와의 정책 차별화의 신호탄으로 각 분야에서 불협화음이 표출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 비대위에서는 현 정부의 기조와 상반되는 정책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할 태세다. 비대위 정책쇄신분과위원회는 13일 전체회의를 열고 현재 정부가 주도하는 서민금융 지원체제를 개편하는 논의에 착수했다. 민간 기부금을 중심으로 한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이명박 정부가 주도해 만든 서민금융정책인 ‘미소금융’을 완전한 민간자율로 운용하도록 한다는 뜻이라고 비대위 관계자는 설명했다.

정부가 3월 이전에 협상을 개시키로 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 제동을 걸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KTX 민영화에 대한 국민의 우려가 크듯이 한·중 FTA가 체결될 경우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의견이 있다”며 “당이 이런 여론을 수렴해 협상 체결 시기에 대한 입장을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해 한·중 FTA 협상을 위한 국내 절차를 밟기로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데 대해 반대 목소리를 낼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비대위는 복지와 대기업 정책 등에 대해서도 현 정부와 차별화를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정책분과위는 최근 회의에서 박근혜 위원장의 복지관을 기조로 삼아 구체적인 정책을 마련하기로 결정했다.

정부는 잔뜩 긴장하는 모습이다. 당이 정부 정책을 뒤집는 일이 잦아지면 국정 운영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정부가 당의 행보에 제동을 걸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실제 KTX 경쟁체제 도입을 추진하던 국토부는 12일 한나라당 비대위의 발표를 듣고 종일 패닉 상태에 빠졌다. 2004년 이후 단계적으로 추진한 정책을 순식간에 부정당한 탓이다.

“비대위가 벌써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같은 움직임을 보인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당이 정부 정책을 뒤집는 일은 더 잦아질 것으로 보인다. 총선과 대선을 치러야 하는 당 입장에서는 정부 정책과 차별화를 통해 유권자들의 지지를 확보해야 하는 절박한 처지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KTX 관련 정책에 반대한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며 “선거가 다가올수록 한나라당은 야당보다 더 과감하게 정부정책을 비판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