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투병 최인호 고백 "죄의식에 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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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최인호(67) 씨가 암투병을 통해 자신을 성찰한 글을 천주교 서울대교구 '서울주보'에 연재했다.
10일 서울주보에 따르면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최 씨는 1월1일자 주보 '말씀의 이삭' 코너에 실린 '지금 이 세상 어디선가 누군가 울고 있다'를 시작으로 매주 글을 싣고 있다. 다음 달까지 모두 9편의 글을 연재할 예정이다.
그는 주보에서 암 발병 사실을 알았을 때 받은 충격과 함께 죄의식에 휩싸였던 경험부터 전했다. 최 씨는 2008년 침샘 부근 암 수술을 한 뒤 모진 항암 치료를 겪으며 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집필했다.
"저는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불어 닥친 이 태풍은 다름 아닌 죄 때문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바오로가 말한 올바른 마음가짐 없이 빵을 먹거나 주님의 잔을 마시는 사람은 신성 모독의 죄를 범하는 것으로 '여러분 중에 몸이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죽은 자가 적지 않은 것은 그 때문(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 번째 서간 11장30절)'이라는 말씀을 떠올렸던 것입니다."
죄의식에 시달렸던 최 씨는 병원 내 어린 환자의 천진한 눈빛을 접하면서 혼란에 빠졌던 경험도 전했다. 어린이의 병은 누구의 죄로 돌리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때 최 씨는 요한복음의 '자기 죄 탓도 아니고 부모의 죄 탓도 아니다. 다만 저 아이에게서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9장3절)라는 구절을 떠올리며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고 밝혔다.
이어 릴케의 시 '엄숙한 시간'을 소개하면서 "우리들이 이 순간 행복하게 웃고 있는 것은 이 세상 어딘가에서 까닭 없이 울고 있는 사람의 눈물 때문"이라며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 어딘가에서 울부짖고 있는 사람과 주리고 목마른 사람과 아픈 사람과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전했다.
8일자 주보에서는 항암치료에 따른 고통을 절절하게 전했다. 2009년 10월 재발한 암을 치료하며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는 것. 그는 항암치료를 포기할 결심까지 하게 된 순간을 고백했다.
"기뻐할 수가 없었으며,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없었으며, 주님이 주는 평화를 조금도 느낄 수가 없었다"는 그는 역시 마태복음에서 예수가 "지금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니, 너희는 여기 남아서 나와 같이 깨어 있어라"(26장38절)고 언급한 부분을 읽고 나서 안식을 얻고 치료를 재개했다.
그는 "하느님의 외아드님이신 주님도 '근심'과 '번민'에 싸여 괴로워 죽을 지경이라고 고통을 호소하였는데, 그렇다면 저의 고통과 두려움은 얼마나 당연한 것인지요"라고 밝혔다.
15일자 '벼랑 끝으로 오라'는 글에서는 투병하면서 겪은 두려움을 밝혔다. "육체의 고통보다 더 힘든 것은 끊임없는 걱정과 두려움이었다. 하루 24시간 매 순간이 마음의 고통이었다"는 얘기다. 두려움의 바닥까지 경험한 뒤 "우리들의 불안과 두려움은 과거와 미래에 대한 생각 때문"이라고 깨달은 그는 이겨내는 데 도움을 준 불교 금강경, 중국 당나라의 선승 황벽(黃檗)의 말, 성경 말씀을 차례로 소개했다.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으며,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 (금강경 중) "과거는 감이 없고, 현재는 머무름이 없고, 미래는 옴이 없다."(황벽) "그러므로 내일 일은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겨라. 하루의 괴로움은 그날에 겪는 것만으로도 족하다."(마태 6장34절)
최 씨는 프랑스 아폴리네르의 시로 글을 마치며 "과거를 걱정하고 내일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우리를 벼랑 끝으로 부르시는 것은 우리가 날개를 가진 거룩한 천사임을 깨닫게 하시려는 것입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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