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발질'  방송통신위…제대로 하는 일이 없네
한국의 방송과 통신 정책을 총괄하는 방송통신위원회가 어쩌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도대체 되는 일이 없다. 제4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 KT의 2세대(2G) 서비스 종료, 지상파 재송신 협상 등에서 동시다발로 난맥상이 펼쳐지고 있다. 비난을 감수하며 한꺼번에 출범시킨 4개 종합편성 채널은 시청률 0%대에서 헤매고 있다. 중앙부처 평가에서는 꼴찌를 했다.

◆KT 2세대 종료 봐주려다 ‘물의’

제4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은 방통위 출범 이후 줄기차게 추진해온 사업이다. KMI와 IST 컨소시엄이 사업 신청을 하면서 연내 사업자를 선정하는 일정에는 별 문제가 없어보였다. 그러나 IST 컨소시엄에서 유력 주주인 현대그룹이 이탈하면서 모양새가 이상해졌다. 그렇잖아도 두 컨소시엄 모두 재무건전성에서 합격선을 통과할지 의문스러운 상태였다.

물론 현대그룹 이탈이 방통위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와이브로 정책 실패를 만회하려다가 자칫 또 다른 정책적 판단 착오를 야기할 수도 있는 형국으로 가고 있다. 방통위가 제4 사업자를 선정하려는 것은 경쟁을 활성화해 요금 인하를 유도하고 와이브로를 살리기 위해서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이 같은 정책적 목표를 달성하기가 어려워졌다는 게 중론이다. 사업 후보자들이 막대한 투자 재원을 조달할 가능성이 낮고 주주 구성도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KT의 2세대 서비스 종료 문제는 방통위의 안일한 정책과 KT의 무리한 업무 추진으로 빚어진 전형적인 인재(人災)다. KT는 4세대용 주파수 확보에 실패하자 2세대 서비스를 서둘러 끝내고 그 주파수로 4세대 롱텀에볼루션(LTE) 서비스를 시작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2세대 서비스를 끝내겠다는 신고서를 제출했고 방통위는 지난달 이를 승인했다. 하지만 최근 행정법원이 방통위 승인을 보류해달라는 010통합반대운동본부의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이면서 모든 것이 꼬이고 말았다. 방통위는 KT가 무리하게 2세대 가입자를 줄이는 과정에서 1000건 이상의 민원을 받았지만 이를 묵살했다. 정부 부처로는 드물게 법원으로부터 ‘법을 어겼다’는 지적까지 받았다.

◆정부 업무평가 꼴찌는 필연?

지상파 재송신 갈등은 방통위 위상을 더욱 초라하게 만들고 있다. KBS MBC SBS 등 지상파 3사와 티브로드 CJ헬로비전 등 케이블 사업자들은 오래 전부터 지상파 재송신 대가를 놓고 협상과 갈등을 되풀이하는 행태를 보였다. 급기야 협상 시한을 넘겨 케이블 사업자들이 지상파의 고화질(HD) 프로그램 재전송을 중단하는 파행을 겪기도 했다. 부랴부랴 방통위가 중재에 나섰지만 전혀 영(令)이 먹히지 않고 있다. 지상파와 케이블 사업자들은 방통위의 중재 능력을 비웃으며 제 갈 길을 가겠다는 입장이다.

최시중 방통위원장의 무리한 종편 지원 정책도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방통위는 작년 말 여론을 무시하고 종편 사업자를 4개나 선정하는 무리수를 뒀다. 이들 4개 종편은 지난 1일 개국 후 0%대의 시청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최 위원장이 5대그룹 광고 담당 임원을 불러모아 광고 지원 확대를 당부한 사실이 알려져 거센 비판을 받았다.

방통위 간부들의 윤리의식도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 통신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상임위원이 KT 임원으로부터 룸살롱 접대를 받은 사실이 알려지는가 하면 전 통신정책국장은 사업자에게 돈을 빌린 게 문제가 돼 뇌물죄로 기소된 상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강해이와 함께 ‘너나 잘하세요’ 분위기까지 감지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중앙부처 업무평가에서 방통위가 꼴찌를 한 것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업계 전문가는 “방통위를 합의제 부처로 출범할 때부터 예견됐던 일”이라며 “정책에 정치 논리가 개입하고 위원장의 독단이 판을 치는 마당에 어떻게 좋은 성과를 내겠느냐”고 반문했다.

김광현 IT전문기자 k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