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왕실 비판은 '금물'…바이어와 거래 땐 인내부터
덴마크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왕국이다. 지금은 작지만 한때 바이킹 왕국으로 유럽을 호령했던 전통 있는 나라다. 스웨덴, 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들과 가까우며 독일과는 육지로 맞닿아 있고, 영국과도 바다를 마주보고 있다. 세계적인 강대국들 사이에서 단일 왕조를 유지해왔으며, 왕실에 대한 국민들의 존경심도 대단하다.

덴마크는 원래 ‘1등’이라는 단어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 혼자서 잘났다고 앞서 나가기보다 뒤처져 있는 사람들을 끌어주는 것을 미덕으로 여긴다. 실업자, 노약자를 위한 사회보장제도를 세계에서 가장 먼저 법제화한 나라도 덴마크다. 평등의식이 강한 덴마크에서는 총리 같은 고위층이라고 우대해 주는 게 없다. 하지만 왕실은 예외다. 아무리 높은 정치 고위층이 참석하는 행사도 신경쓰지 않는 덴마크 기업이라도 왕실에서 주관하는 행사는 적극적으로 협조한다. 덴마크 사람들에게 함부로 왕실에 대한 비판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덴마크 사람들의 평등의식을 보여주는 사례는 많다. 회사를 방문해 보면 현관 입구에 사장 자리가 있는 경우도 있다. 따로 칸막이도 없어 최고경영자(CEO)라는 명함을 잘 보지 않으면 접수창구 직원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대기업 사장이 직접 운전하고, 손님 차대접까지 하는 경우도 많다. 경영층의 권위의식이 없는 만큼 직원들의 권한과 자존심은 높은 편이다.

덴마크 사람들은 직업의 귀천의식이 없다. 우리 사무실의 아르바이트 청소원 중에는 미용실 경영자도 있었고, 재즈밴드의 보컬리스트도 있었다. 덴마크 기업과 상담할 때 상대의 직급이 낮아 보이더라도 함부로 대하면 안되는 이유다.

수도 코펜하겐은 덴마크 본토에서 떨어져 있는 쉘란섬에 있다. 코펜하겐 항구는 바이킹 시대부터 인접국들과의 해상 무역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코펜하겐은 ‘상인들의 항구’라는 뜻으로, 그만큼 이 지역 사람들의 상술이 뛰어나다.

덴마크 바이어와 처음으로 상담한 한국 기업 담당자가 “도무지 덴마크 바이어의 속내를 알 수 없다”고 하소연한 경우가 있었다. 보통 가격이 비싸니 얼마만큼 싸게 해 달라는 요구가 있게 마련인데, 이 바이어는 가격에 대해서 아무런 언급이 없어 얼마를 제시해야 할지 답답하다는 것이다. 결국 이런 저런 속내를 다 내보이며 협상의 주도권은 덴마크 바이어에게로 넘어간다.

덴마크는 물가가 비싸다. 모든 상품과 서비스에 소비세가 25% 부과된다. 평균 소득세 또한 50%에 육박한다. 인건비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래서 덴마크 사람들은 항상 바쁘다. 야근, 주말근무라는 게 없지만 항상 바빠한다. 회사일뿐만 아니라 퇴근 뒤 취미생활도 해야 하고 가사일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연간 6주에 이르는 휴가를 다 사용하려면 근무일은 시간을 쪼개 써도 부족하다.

덴마크 왕실 비판은 '금물'…바이어와 거래 땐 인내부터
높은 인건비로 인해 기업들의 종업원 수도 적기 때문에 혼자서 많은 일들을 해야 한다. 급하거나 중요하지 않은 일은 항상 우선 순위가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덴마크 바이어와의 상담 후 국내 기업의 가장 큰 불만은 바이어로부터 연락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바이어가 무관심해서 회신을 안 한다기보다는, 당장 신규 거래처 선정이 급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회신을 더디게 하는 것뿐이다. 덴마크 바이어와의 거래는 인내가 요구된다.

선정 요한센 < KOTRA 코펜하겐 무역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