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 회수하는 유럽은행…기업 "돈줄 마른다" 非常
재정위기 여파로 자금난을 겪고 있는 유럽 은행들이 해외 시장에 투자했던 돈을 거둬들이고 있다. 그리스 이탈리아 등 재정위기 국가의 채권 등에 물린 투자금 중 상당액을 떼이면서 생존의 기로에 서게 된 탓이다. 이 때문에 아프리카 호주 남미 지역 기업들의 돈줄이 마르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3일 보도했다.

◆자금 회수에 기업들 유탄 맞아

프랑스 최대 은행 BNP파리바는 호주 미디어 업체 세븐웨스트미디어에 3억호주달러를 대출해주기로 했다가 지난달 철회했다. 세븐웨스트미디어는 당초 19억5000만호주달러 규모의 신디케이트론(두 개 이상의 금융기관이 같은 조건으로 기업에 대규모 자금을 빌려주는 것)을 추진했지만 계획에 차질을 빚게 됐다.

세계 4위 항공업체인 브라질의 엠브라에르도 유럽 은행들이 대출을 줄이면서 자금난에 빠졌다. 나이지리아 투자은행인 아프리카파이낸스(AFC)는 대출을 약속했던 유럽 은행들이 발을 빼는 바람에 2억달러 규모의 원유 프로젝트 두 개가 좌초될 위험에 처했다고 WSJ는 전했다.

유럽 재정위기가 본격화되기 전까지 유럽 은행들은 적극적으로 신흥국가들에 돈을 빌려줬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올해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은행들의 신흥시장 대출은 2005년보다 4배 늘어난 2조4000억달러에 달했다.

WSJ는 이 자금 중 상당액이 단기간에 빠지면 신흥국 경제가 흔들릴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체코가 유럽계 은행으로부터 받은 대출은 국내총생산(GDP)의 105%에 달한다. 칠레는 40%,브라질은 15%,멕시코는 18%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 기업도 사정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350년 전통의 스위스 제지업체인 샴페이퍼그룹은 제조 공장을 이탈리아로 이전하기로 했다. 금융위기로 안전자산인 스위스프랑 가치가 치솟은 탓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여행사인 영국의 토머스쿡은 부도 위기에 처했다. 부도설이 나돌면서 22일 토머스쿡 주가는 75.2% 폭락했다.

유럽의 신용경색은 미국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시장조사 업체 딜로직에 따르면 지난 3분기 유럽 은행들이 미국 기업에 대한 신디케이트론에 참여한 비율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포인트 하락한 20%에 그쳤다.

◆코메르츠방크도 구제금융 필요

지난달 유럽연합(EU) 정상들은 민간은행에 대한 그리스 국채 상각(헤어컷 ) 비율을 21%에서 50%로 높였다. EU가 은행 자기자본비율을 7%에서 9%로 올리기로 하면서 자금 압박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유럽 178개 은행들이 유럽중앙은행(ECB)으로부터 22일 하루 동안에만 받은 긴급대출 규모가 2490억유로에 달해 하루 기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안전지대로 여겨졌던 독일 은행들도 휘청거리고 있다. 유럽은행감독기구(EBA)는 "독일 2위 은행인 코메르츠방크가 29억유로의 자금난에 직면했다"며 "정부의 구제금융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 탓에 코메르츠방크 주가는 22일 19.8% 떨어졌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지난 16일 도이체히포 등 10개 독일 지방은행의 신용등급을 강등했다.

정성택 기자 naiv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