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양하 한샘 회장(63)이 즐겨 찾는다는 맛집 '일미칼국수'는 서울 방배동 카페골목 중간쯤에 있었다. 이수교 근처에 있는 한샘 본사에서 도보로 10분 거리다. 제법 쌀쌀한 날씨인데도 20평 남짓한 식당 안이 시끌벅적했다. 평범한 칼국수 전문집인 줄 알았는데 삼겹살 굽는 냄새가 가득하다. 저녁 시간에는 삼겹살이 메인 메뉴란다. 삼겹살과 칼국수,어울릴 것 같지 않은 메뉴지만 샐러리맨들이 부담없이 찾기에 제격인 듯싶다. 최 회장의 23년 단골집.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소주잔부터 돌렸다. 한때는 웬만큼 마셔도 취하지 않을 정도로 술이 세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방배동으로 사옥을 이전한 1988년부터 하루가 멀다하고 찾는 곳이에요. 단골 중에서도 단골인 셈이지요. 이 집 칼국수의 담백한 맛은 일품이에요. 삼겹살도 좋고요. 그래서 직원들과 회식을 자주하죠."

일미칼국수는 최 회장에겐 각별한 장소다. 창업주인 조창걸 명예회장과 술잔을 기울이며 사업 구상을 하던 곳이기 때문이다. 추억이 묻어 있다. 추억은 이곳에서 젊은 직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최 회장은 영업사원이나 설치기사,디자이너 등 일선 직원들의 현장 냄새가 나는 얘기를 들으러 이곳을 자주 찾는다. "일선 근무자들과 삼겹살에 소주 잔을 기울이다 보면 솔직한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어요. 반짝이는 아이디어든,현장에서 겪는 애로사항이든 모두가 회사 경영에 적잖은 도움이 되거든요. "

최 회장은 국내 가구업계에서 보기드문 전문경영인이다. 18년째 한샘을 이끌고 있는 장수 최고경영자(CEO)이기도 하다. 그에게 장수 비결을 물었다. "(조 명예회장이) 하라니까 한 거죠"라며 소탈하게 웃었다. "소신을 갖고 일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오너와 생각이 다를 수도 있지만….언제든 사표를 낼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일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

전문경영인이라는 제약도 있지만 최 회장 스스로가 언론에 잘 나서지 않는 편이다. 실적으로,성과로 보여주는 게 더 중요하다는 소신을 갖고 있어서다. 이날은 달랐다. 소주가 한 순배 돌고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지자 거침없이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소탈한 이미지만큼이나 말에도 꾸밈이 없었다.

최 회장이 한샘에 합류한 것은 1979년이었다.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나와 대우중공업에서 사회 첫발을 내디뎠던 그는 지인의 권유를 받고 선뜻 이직을 결심했다. 당시 싱크대를 만들던 한샘은 매출이 수억원에 불과했던 자그마한 부엌가구회사였다. "포부가 참 컸었죠.당시는 제세 율산 등 신흥재벌들이 욱일승천하던 시절이었어요. 신흥재벌 한번 일궈보고 싶다는 게 샐러리맨들의 꿈이었죠.요즘으로 치면 벤처 열풍 같은 거였어요. 부모님과 아내가 반대했지만 한번 꿈을 펼쳐보자는 생각에 회사를 옮겼죠."

한샘에서 생산과장이라는 명함을 받아든 최 회장은 경기도 안산 수암공장부터 찾았다.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더군요. 제법 그럴싸한 공장인줄 알았는데 목공소나 다름없더라고요. " 최 회장은 그날로 옛 직장동료들과 연락을 끊었다. "주변에 자랑할 만한 회사로 키워낼 때까지는 아무도 만나지 않겠다는 오기가 생기더군요. 그때부터 죽어라고 일에 매달렸죠."

최 회장은 생산라인의 기계화 · 자동화 작업부터 했다. 당시 수작업에 의존하던 국내 가구 생산방식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확신에서였다. 대우중공업 근무 시절 엔진과 주물 생산업무를 맡았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대학 전공이 철(鐵)학이잖아요(웃음).자신 있었죠.우여곡절도 겪었지만 밤을 새워가며 문제점을 하나씩 해결했어요. " 이때의 공장 자동화 작업은 한샘이 국내 대표 부엌가구회사로 발돋움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삼겹살이 먹음직스럽게 노릇노릇 익자 최 회장이 먼저 상추를 집어들었다. "이 집 삼겹살은 생고기를 그대로 쓰기 때문에 육질이 부드럽고 좋아요. 그냥 드시지 말고 삼겹살에 김치를 얹어 상추쌈으로 드세요. 돼지고기의 부드러운 육질과 김치 맛의 조화가 한마디로 예술입니다. 다른 삼겹살 집에서는 맛볼 수 없는 별미예요"라며 직접 상추쌈 시범을 보였다.

최 회장은 삼겹살 두어 점을 먹고는 이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건강이 나빠지니까 즐길거리도 많이 줄어들더군요. 술도 많이 줄였고 삼겹살도 예전처럼 양껏 먹지 못하니까요. 그래도 낙(樂)이 있다면 동네 이웃들과 포도주 한 잔 하는 거예요. 주말에 양재천을 끼고 1㎞ 남짓 걷고 나서 동네 카페에서 포도주를 한 잔하는 게 코스가 됐어요. "

최 회장은 직원들에게 '워크홀릭'이라는 얘기를 듣는다. 환갑이 지난 나이지만 열정만큼은 갓 입사한 신입직원 못지않아서다. "아직까지는 직원들과 얼굴 맞대고 일하는 게 최고의 즐거움이에요. 예전에는 가끔 일에 지치기도 했는데 나이가 드니까 오히려 일이 더 즐거워지더라고요. "

최 회장은 부엌가구업체로 출발한 한샘을 국내 최고 가구업체로 키워냈다. 요즘에는 장롱 침대 소파 거실장 화장대 등도 한샘 브랜드를 쳐준다. 이 때문에 한샘 실적은 업계에서 독보적이다. 건설경기 침체 등으로 국내 가구업체 대다수가 실적 부진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한샘은 고공행진 중이다. 올해 매출은 지난해(5570억원)보다 20% 이상 늘어날 것으로 자신하고 있고 2년 후인 2013년엔 1조원 달성을 목표하고 있다.

최 회장은 요즘 일하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털어놨다. "가구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어요. 과거처럼 단순히 가구 단품을 팔던 시절은 지났습니다. '공간'을 파는 시대가 오고 있어요. 새로운 도전 과제가 생긴 셈이죠.그러니 일하는 게 즐거울 수밖에요. "

'공간 비즈니스'에 대한 최 회장의 설명이 이어졌다. "침대는 에이스,장롱은 바로크,화장대는 보루네오식으로 따로따로 가구를 구매하다 보면 집안 인테리어가 뒤죽박죽이 되기 십상이에요. 분위기나 디자인 등을 하나의 컨셉트로 살리기가 쉽지 않죠.그래서 수년 전부터 직영점이나 대리점에서 평형대별로,취향에 맞는 '공간 구성'을 제안하는 전략을 썼는데 그게 먹혀들더군요. "

삼겹살로 허기를 채우고 나자 최 회장은 맥주를 주문했다. "집사람한테 야단맞을 텐데…"라면서도 폭탄주를 만들어 돌렸다. 그 틈에 이케아 얘기를 슬쩍 꺼냈다. 스웨덴의 이케아는 연 매출 40조원에 이르는 세계 최대 가구회사다. 한샘보다 덩치가 70배 크다. 이케아의 국내 시장 진출을 앞두고 가구업계는 이케아 경계령으로 비상이다. 디자인과 가격 경쟁력을 갖춘 이케아에 자칫 안방을 통째로 내줄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최 회장도 꽤나 부담스럽다는 눈치였다. "이케아…. 참 (사업을) 잘하는 회사예요. 이케아만한 비즈니스모델은 아직은 없어요. 한샘이 창업할 당시만해도 중소기업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세계적 기업으로 컸으니 부럽죠."

◆ "이케아도 한 수 배워가…해외시장서 제대로 겨뤄볼 것"

그러다 대뜸 "이케아도 한샘에서 한 수 배운 적이 있다"고 눈을 크게 떴다. 의외다 싶어 따져물었다. "10년쯤 됐을 겁니다. 이케아 임원이 찾아와 전시장을 쭉 둘러보고 갔어요. 당시 부엌가구를 패키지 형태로 판매하고 있었는데 많은 관심을 보이더군요. 부엌이라는 공간을 파는 한샘의 비즈니스 모델을 벤치마킹해 간 거죠.그 뒤로 이케아도 전시장을 한샘과 비슷한 방식으로 꾸미더군요. "

이케아에 한 수 가르쳤던 경험 때문일까. 최 회장은 이케아와의 한판 승부에 자신감을 드러냈다. "한샘은 공간 개념을 더 확장해나갈 겁니다. 단순히 가구에 머물지 않고 벽지 창호 바닥재 등 인테리어 제품까지 묶어 '공간'을 파는 전략으로 가는 거죠.침실을 예로 들어봅시다. 침대 화장대 등 가구만 침실을 구성하는 요소가 아닙니다. 조명 바닥재 벽지 창호 등도 중요한 인테리어 요소들이죠.이런 것들을 모두 망라해서 특정 컨셉트나 분위기를 연출하는 공간을 상품화하겠다는 겁니다. 취급하는 품목이 제한적인 이케아나 홈디포는 이런 모델을 따라오지 못할 겁니다. "

비장의 카드도 준비했다고 했다. "내년에 벽지와 창호 시장에도 진출할 거예요.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방식으로 한샘 브랜드를 내놓을 겁니다. 이렇게 되면 인테리어와 관련된 '올 라인업'을 갖추게 됩니다. " 한샘은 이미 바닥재 시장에 진출,월 10억원가량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최 회장은 2년 뒤에는 바닥재 매출이 월 50억원에 이를 것으로 자신했다.

자연스럽게 국내 건자재 시장이 화제에 올랐다. LG하우시스 KCC 한화L&C 등 대기업이 주도하는 건자재 시장에서 승산이 있겠느냐고 물었다. "건자재는 소비자가 직접 구매하는 게 아니라 인테리어업자들이 구매하는 구조예요. 브랜드보다는 품질과 가격으로 승부할 여지가 많은 시장이죠.2만5000여개에 달하는 국내 인테리어업체 가운데 한샘이 이미 3000여곳과 거래를 맺고 있는 것도 건자재 시장에 진출하는 데 큰 힘이 될 겁니다. "

화제는 다시 욕실 사업으로 옮겨갔다. 한샘은 욕실 인테리어 사업에 진출,월 15억원 안팎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욕조 변기 세면대 등을 따로 파는 게 아니라 욕실 리모델링 사업이 주력이다. "LG하우시스 같은 대기업이 한샘을 부러워하는 게 있어요. 바닥재 욕실 등을 한샘이 직접 시공한다는 거죠.건자재의 품질은 시공이 좌우하는데 정작 건자재 업체들은 좋은 제품을 만들고도 인테리어 시공업자들 때문에 욕을 먹거든요. 한샘은 앞으로도 직영점을 통해 욕실 마루 부엌 시공을 직접 할 겁니다. "

해외사업 구상도 털어놨다. "지난 16일 문을 연 5호 직매장인 부산 센텀점이 출발점이에요. 거기서 중국 인도 일본 등지로 뻗어나가야죠.2년 뒤에는 중국에 대형 직매장을 낼 겁니다. 이케아와 제대로 붙어봐야죠."

한샘이 과연 이케아를 대적할 수 있을까. 이케아는 36개국에 300여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가구업계 골리앗이다. 하지만 최 회장의 믿음은 확고했다. "이케아는 도심에서 벗어난 교외에 조립식 가구 매장을 냅니다. 반면 한샘은 핵심상권을 집중 공략하는 도심형이에요. 평당 매출 등에서 한샘이 이미 이케아를 앞서고 있어요. 언젠가는 이케아를 뛰어넘어 세계 최대 가구유통 기업으로 거듭날 겁니다. "

대화에 몰두하다 보니 밤 10시가 훌쩍 지나 있었다. 자리를 정리할 시간이었다. 최 회장은 아쉬웠던지 "그래도 이 집 칼국수 맛은 꼭 봐야죠"라며 칼국수를 권했다.
◆ 최양하 회장의 단골집 일미칼국수
쇠고기 육수에 얇은 면발…"궁중비법 살려내"


12시간을 우려낸 쇠고기 육수에 얇은 면발과 김 고기 호박 계란 등을 고명으로 올린 칼국수 집이다. 궁중 비법을 그대로 재현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접할 수 있는 굵은 면발의 칼국수가 아니다. 면발이 마치 기계로 뽑아낸 국수처럼 얇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아들이 직접 면발을 손으로 뽑는다. 38년째 이곳에서 영업 중이다. 나이 지긋한 30년 단골도 많다고 한다.

칼국수(8000원)와 국물이 없는 칼국수인 건짐국수(9000원)가 주 메뉴다. 북어찜(8000원)과 오징어볶음(8000원) 등도 있지만 메뉴가 단출한 편이다. 저녁 시간에는 국내산 최고 부위를 사용하는 삼겹살(1인분 1만3000원)이 메인 메뉴다. (02)593-9924

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