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의 1조원대 유상증자 결정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4일 증시전문가들은 다소 유보적인 반응을 보이면서도 갑작스러운 유상증자 결정에 불확실성이 커졌다고 판단했다.

LG전자는 전날(3일) 주력사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1조620억원 규모의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으로 유상증자를 실시, 신주 190만주(증자비율 11.74%)을 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LG전자가 당장 유동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대규모 자금의 사용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졌다고 지적했다.

김종완 삼성증권 연구원은 증자의 배경으로 "성장기반 확충 및 주력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 최근 해외 신용평가사들의 등급 하향에 따른 선제적인 자금 확보, 끝으로 예상치 못했던 구조조정 등의 비용 발생 가능성"을 꼽았다. 이어 "앞서 두 경우는 증자의 정당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나쁜 선례를 만들 우려가 있고 마지막의 경우는 사업 전망과 관련된 우려를 크게 확대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혜용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LG전자의 이번 증자목적이 신규 사업에 대한 투자가 아닌 기존 사업에 대한 시설투자와 운영자금을 위한 것이라서 실적 개선세가 뚜렷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유동성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자금난을 겪고 있는 자회사에 대한 지원 수단이나 인수합병(M&A) 자금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강윤흠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 유상증자의 배경으로 자회사 지원의 가능성을 높게 본다"며 "이번 증자는 회사의 유동성 위기에 따른 것이 아니라 자회사 지원 등을 고려한 선제적인 대응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강 연구원은 "LG디스플레이가 신규 투자 규모를 2조원 늘릴 경우 같은 규모인 2조원의 자금 조달이 필요할 것"이라며 "LG전자의 자회사 지원 형태는 자회사 유상증자 시 대주주로서 지분율에 상당한 참여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이번 증자 결정이 전자 계열사 자금 조달의 신호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해석이다.

권성률 동부증권 연구원 역시 "LG디스플레이 등 자회사의 유상증자를 대비한 실탄 마련과 가장 가능성이 큰 LG전자의 신사업 진출 또는 인수합병(M&A) 등에 쓰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LG전자의 주가가 단기간 내에 반등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권 연구원은 "전날 주가가 13.7% 빠지면서 이론적인 희석비율 이상으로 이미 하락했다"며 "하지만 관련 내용을 떠나서 일단 LG전자와 LG그룹에 대한 투자심리가 극도로 나빠져 당분간 악화된 투자심리는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종완 연구원은 "증자영향은 상당부분 이미 반영된 것으로 보여 추가 하락은 제한적일 수 있겠지만 향후 빠른 반등 역시 어려울 것"이라며 "증자를 통한 투자 확대 효과는 중장기적인 반면, 주력 사업 경쟁력의 저하는 현재 진행형이어서 우려를 해소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오히려 향후 사업 방향성에 대한 불확실성이 증가한 셈"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감정적 대응보다는 회사 가치를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다.이미 주가가 13%나 하락한 상황에서 섣부르게 매도에 나서는 것보다 상황을 지켜보는 게 낫다는 것이다.

최남곤 동양증권 연구원은 "주가의 바닥은 현 주가에서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며 "밸류에이션(가치 대비 주가) 수준도 그렇지만 휴대폰 사업이 지극히 부진했던 2007년 1월(5만1000원), 리먼 사태가 발생했던 2009년 3월(6만7600원)에 비해 현 상황이 더 나빠지지는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김혜용 연구원은 "앞으로 추가적인 주가조정이 과도하게 이뤄질 경우엔 LG전자의 '매수' 기회로 삼아도 유효할 것"이라고 말했다. 4분기부터 MC사업부문(휴대폰)의 실적이 서서히 회복세에 접어들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이다.

전성훈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과거 LG화학과 석유화학의 분리와 합병과 LG정보통신의 흡수합병 시 투자자들이 감정적 대응해 관련 회사 주가가 단기 급락했으나 결국 주가 상승에 따라 투자자의 손실만 확대됐다"며 "현금 확보에 따라 LG전자의 기술 투자 자금력과 재무구조 등의 개선을 고려하면 현재 주가 수준은 경쟁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상태이다"고 조언했다.

한경닷컴 이민하 기자 mina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