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술ㆍ신에너지] '추격자' 한국기업은 옛말…이젠 '퍼스트 무버'로 변신
우리 기업들이 과거에는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 해소에 주력했다면, 이제는 세계 시장을 이끌 선도자 역할에 적극 나서고 있다.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에서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위상이 바뀐 것이다. 반도체, 자동차, TV처럼 현재 주도적 위치에 있는 분야에선 신기술 연구·개발(R&D)로 1위를 수성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더불어 신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신재생에너지, 전기차, 자원개발 등에서도 세계적 기업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공격적 투자에 나서고 있다.

[신기술ㆍ신에너지] '추격자' 한국기업은 옛말…이젠 '퍼스트 무버'로 변신
삼성그룹은 현재 1위를 달리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에서 신기술을 개발하는 데 역량을 모으고 있다. 대표적인 차세대반도체로 꼽히는 M램(자기메모리) 개발을 위해 지난 8월 미국 그란디스를 인수했다. 이달 초 미국 마이크론과 함께 차세대 반도체인 ‘하이브리드 메모리 큐브(HMC)’ 개발 컨소시엄도 구성했다. 향후 글로벌 IT업계의 대세를 이룰 친환경 제품도 개발하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가 지열·공기열 등을 활용해 발표한 ‘그린 홈 솔루션’이 대표적이다. 이와 함께 삼성물산을 통해 자원개발에 나서고 있다. 삼성물산은 지난해 한국광물자원공사와 함께 세계 최대 리튬 개발광구인 칠레 아타카마 염호에서 리튬 생산을 시작했고 태양광 사업도 활발히 벌이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그린카 시장의 주도권을 선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2003년만 해도 1조1382억원으로 전체 매출액에서 3% 수준인 R&D 투자비를 2009년 1조9924억원으로 75% 늘렸다. 지난해에는 전년 대비 53.3% 투자를 늘렸다. 이런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하이브리드카와 전기차 분야에서도 속속 성과를 내고 있다. 지난 5월 쏘나타 하이브리드와 K5 하이브리드를 출시한 데 이어 9월에 고속 전기차인 ‘블루온(BlueOn)’을 공개했다. 올해 말엔 소형 CUV 전기차 ‘탐(TAM)’을 출시한다. 2012년엔 수소연료전지차를 보급하고 이어 2015년엔 본격 양산할 계획이다.

LG그룹은 2015년까지 녹색 사업에 8조원을 투자해 10조원 매출을 달성한다는 ‘그린 2020 전략’을 수립했다. 이를 통해 전기차, 태양광, LED(유기발광다이오드) 조명 등을 신성장 동력으로 삼으려 하고 있다. 또 2015년까지 3조원 이상을 전기차에 쏟아 4조원 매출을 전기차에서 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 중심은 전기차 배터리다. LG는 현재 10만대 수준인 LG화학의 전기차 배터리 생산능력을 2013년까지 35만대 규모로 늘리고 2015년까지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25% 이상을 확보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SK그룹은 녹색기술을 다른 산업에 융합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그린카 배터리, 청정 석탄에너지 분야에서 신기술을 확보해왔다. 그린카 배터리 분야의 핵심기술인 전기자동차용 리튬이온 배터리 기술을 확보해 2009년 10월 독일 다임러 그룹의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공급업체로 선정됐다. 청정 석탄에너지 부문에선 저급 석탄을 ‘석탄 가스화’ 공정을 통해 만든 합성가스를 활용해 합성석유, 합성천연가스, 화학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SK케미칼은 신재생에너지로 각광받고 있는 바이오디젤로 세계 시장 공략을 노리고 있다.

포스코는 ‘무탄소 쇳물 생산’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첫 단계가 바로 파이넥스(FINEX) 설비 상용화였다. 일반 제철소는 쇳물을 만들 때 부스러기 형태의 철광석과 유연탄을 용광로에 넣기 전 덩어리 형태로 만드는 과정을 거친다. 파이넥스는 이런 중간 과정을 생략한 기술로 제철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크게 줄일 수 있는 공법이다. 포스코는 이 공법을 상용화한 데 이어 작년부터 탄소 추방을 위한 장기 프로젝트 이행에 들어갔다.

현대중공업은 고부가가치 선박개발에 전사적인 힘을 쏟고 있다. 지난달 총 200억원을 투입해 연면적 1만4700㎡ 규모 종합연구동을 신축했다. 이 곳에서 310여명의 연구진들은 고부가가치 선박에 주력할 계획이다. 현대중공업은 스마트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 3월 세계 최초로 원격 제어·관리가 가능해 차세대 선박으로 불리는 ‘스마트십’을 개발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