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옛 詩와 그림 속에 이런 이야기가…
'"며칠간을 정신없이 마셔대놓고/오늘 아침 술 생각 다시 나세요?"/"당신 말이 당연히 옳긴 하오만/이 국화 가질 두고 차마 어쩌랴?"(권필,'집사람이 술을 그만 마시라고 권하기에 시로써 답하며')

술 좋아하는 남편의 불콰한 얼굴보다 그를 타박하는 아내의 걱정어린 표정이 더 생생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때는 국월(菊月 · 음력 9월),마음은 국화가지를 향해 달려가는데….

성균관대 인문과학연구소의 고전학자 김종서 씨가 쓴 《봄 여름 가을 겨울》은 옛시와 회화의 성찬이다. 저자는 우리 한시를 중심으로 다양한 시와 노래를 넘나든다. 한시의 가락과 흐름이 비슷한 현대시와 가곡,동요까지 등장시킨다. 각각의 작가가 시를 지을 당시의 심경,사소한 주변 정황까지 포착해 지금 여기의 언어로 옮겨놓은 솜씨가 탁월하다. 시인의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보이는 그림까지 펼쳐보이며 감성을 한껏 자극한다.

저자의 시선은 계절의 변화를 따라간다. 많이 알려진 대가의 시는 물론 먼지 쌓인 고서 속에 묻혀 있던 시편들도 찾아내 계절에 맞는 것끼리 모았다.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로 국화 얘기를 꺼낸 뒤 국화주에 대한 선비들의 풍류를 노래하고,안줏거리로 변훈의 '명태' 이야기를 하는 식으로 각각의 시와 그림을 비단실로 꿴 구슬처럼 엮어낸 스토리텔링 솜씨가 빛난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