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산업용 온도계 분야 선두 기업인 머큐리는 시장 성장이 정체되자 고민 끝에 가정용 온도계 시장에 진출했다. 주력 제품인 산업용 온도계와 가정용 온도계는 비슷해 보였고, 오히려 훨씬 쉬운 제품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머큐리의 경영진은 당연히 새로운 시장에서도 성공할 것으로 확신했다. 하지만 새 사업을 시작한 이후 3년 동안 적자에 허덕이다 결국 가정용 온도계 시장을 포기했다. 무엇이 잘못됐던 걸까.

새로운 사업을 고민하는 기업이 가장 먼저 생각해 보는 것은 대체로 시장 규모, 성장성, 수익성 등 시장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게 매력적인 시장은 남들에게도 좋아 보이는 법이다. 이런 신사업에는 너나 할 것 없이 뛰어들게 마련이고, 블루오션인 줄 알고 들어간 사업이 몇 년 지나지 않아 치열한 레드오션으로 변해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이유로 신규 사업을 고민할 때는 우리 회사가 경쟁사보다 과연 잘 해낼 수 있는 사업인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그렇다면 다른 회사보다 잘할 수 있는 분야는 어디일까. 사업 경험과 노하우를 십분 발휘함으로써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는 분야, 즉 인접영역이다. 기존 사업에서 쌓아온 경험과 노하우를 쉽게 적용할 수 있다면 새로운 사업에 따르는 리스크를 훨씬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업을 확장할 때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할 것은 기존 사업과 비슷한 인접영역을 찾아보는 것이다. 신규 사업이 인접영역이 되기 위해서는 사업 간 요구되는 역량이 비슷해야 한다. 제품이 비슷하다고 해서 시너지가 생기지는 않는다.

머큐리의 가정용 온도계 사업 실패는 사업 간 시너지에 대한 통찰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산업용 온도계와 가정용 온도계는 제품으로서는 상당히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산업용 온도계에 요구되는 핵심 역량인 연구·개발 능력, 주문 생산에 대응하는 전문성 등은 가정용 온도계를 만드는 데 필요한 역량이 되지 못했다.

가정용 온도계를 잘 만들기 위한 핵심 역량은 제품 디자인, 가격 경쟁력과 같은 것으로 산업용 온도계를 잘 만들기 위해 필요한 역량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쉽게 말해서 가정용 온도계는 싸고 예쁘면 되는 것이지, 1000도가 넘는 온도에서 견디거나 100분의 1도까지 정밀하게 측정해야 할 필요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최종 제품은 전혀 비슷해 보이지 않지만 인접영역인 경우도 있다. 학습지 시장에서 탄탄한 기반을 갖춘 웅진은 웅진코웨이를 설립해 정수기 시장에 진출했다. 그런데 1998년 외환위기 때 1년 만에 매출이 30% 이상 줄어드는 위기를 맞게 됐다. 웅진코웨이의 결단은 ? ‘생산-판매’ 단계로 이뤄지던 기존의 사업을 ‘생산-렌털-서비스’라는 새로운 모델로 혁신했다. 고가의 내구재 구매를 망설이던 사람들을 매달 2만7000원이라는 비교적 저렴한 금액을 납부하는 ‘렌털’제도를 통해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더 나아가 전국적으로 코디 서비스 시스템을 구축, 전문적인 정수기 관리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 결과 웅진코웨이는 정수기 시장에서 독보적인 1등 기업이 됐다.

웅진코웨이의 성공 스토리는 사업 간 인접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제품 간의 유사성이 아니라 사업에 필요한 역량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사점을 준다. 학습지와 정수기는 비슷한 점이 전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웅진이 축적해 온 역량인 우수한 교사, 전국적 네트워크 및 교사 관리 노하우는 정수기 사업에서 요구되는 역량인 우수한 자질을 가진 코디, 전국적인 서비스망 및 코디 관리 노하우와 많이 닮아 있다. 두 사업이 요구하는 역량이 비슷했기 때문에 쌓아온 경험과 노하우를 쉽게 활용할 수 있었다.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은 높아져만 가고 경쟁이 갈수록 심해지다 보니 신규 사업 추진을 고민하는 기업이 점점 늘고 있다. 기존 사업에서 쌓은 노하우와 경험을 쉽게 이전할 수 있는 인접영역을 찾는 회사들은 명심해야 한다. 시너지는 제품이 비슷하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요구 역량이 같은 사업에서 생겨난다.

이우창 <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