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밀도 보단 가격·디자인 중요
인접영역 진출 땐 시너지 있어야
새로운 사업을 고민하는 기업이 가장 먼저 생각해 보는 것은 대체로 시장 규모, 성장성, 수익성 등 시장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게 매력적인 시장은 남들에게도 좋아 보이는 법이다. 이런 신사업에는 너나 할 것 없이 뛰어들게 마련이고, 블루오션인 줄 알고 들어간 사업이 몇 년 지나지 않아 치열한 레드오션으로 변해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이유로 신규 사업을 고민할 때는 우리 회사가 경쟁사보다 과연 잘 해낼 수 있는 사업인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그렇다면 다른 회사보다 잘할 수 있는 분야는 어디일까. 사업 경험과 노하우를 십분 발휘함으로써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는 분야, 즉 인접영역이다. 기존 사업에서 쌓아온 경험과 노하우를 쉽게 적용할 수 있다면 새로운 사업에 따르는 리스크를 훨씬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업을 확장할 때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할 것은 기존 사업과 비슷한 인접영역을 찾아보는 것이다. 신규 사업이 인접영역이 되기 위해서는 사업 간 요구되는 역량이 비슷해야 한다. 제품이 비슷하다고 해서 시너지가 생기지는 않는다.
머큐리의 가정용 온도계 사업 실패는 사업 간 시너지에 대한 통찰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산업용 온도계와 가정용 온도계는 제품으로서는 상당히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산업용 온도계에 요구되는 핵심 역량인 연구·개발 능력, 주문 생산에 대응하는 전문성 등은 가정용 온도계를 만드는 데 필요한 역량이 되지 못했다.
가정용 온도계를 잘 만들기 위한 핵심 역량은 제품 디자인, 가격 경쟁력과 같은 것으로 산업용 온도계를 잘 만들기 위해 필요한 역량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쉽게 말해서 가정용 온도계는 싸고 예쁘면 되는 것이지, 1000도가 넘는 온도에서 견디거나 100분의 1도까지 정밀하게 측정해야 할 필요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최종 제품은 전혀 비슷해 보이지 않지만 인접영역인 경우도 있다. 학습지 시장에서 탄탄한 기반을 갖춘 웅진은 웅진코웨이를 설립해 정수기 시장에 진출했다. 그런데 1998년 외환위기 때 1년 만에 매출이 30% 이상 줄어드는 위기를 맞게 됐다. 웅진코웨이의 결단은 ? ‘생산-판매’ 단계로 이뤄지던 기존의 사업을 ‘생산-렌털-서비스’라는 새로운 모델로 혁신했다. 고가의 내구재 구매를 망설이던 사람들을 매달 2만7000원이라는 비교적 저렴한 금액을 납부하는 ‘렌털’제도를 통해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더 나아가 전국적으로 코디 서비스 시스템을 구축, 전문적인 정수기 관리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 결과 웅진코웨이는 정수기 시장에서 독보적인 1등 기업이 됐다.
웅진코웨이의 성공 스토리는 사업 간 인접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제품 간의 유사성이 아니라 사업에 필요한 역량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사점을 준다. 학습지와 정수기는 비슷한 점이 전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웅진이 축적해 온 역량인 우수한 교사, 전국적 네트워크 및 교사 관리 노하우는 정수기 사업에서 요구되는 역량인 우수한 자질을 가진 코디, 전국적인 서비스망 및 코디 관리 노하우와 많이 닮아 있다. 두 사업이 요구하는 역량이 비슷했기 때문에 쌓아온 경험과 노하우를 쉽게 활용할 수 있었다.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은 높아져만 가고 경쟁이 갈수록 심해지다 보니 신규 사업 추진을 고민하는 기업이 점점 늘고 있다. 기존 사업에서 쌓은 노하우와 경험을 쉽게 이전할 수 있는 인접영역을 찾는 회사들은 명심해야 한다. 시너지는 제품이 비슷하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요구 역량이 같은 사업에서 생겨난다.
이우창 <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