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품 세일행사(반월가 시위)에 이월상품(홈리스대책,저축은행사태)만 파니 손님이 없죠."

토요일인 지난 15일 오후 2시30분,서울 여의도 금융위원회 앞에서 '여의도를 점령하라-금융수탈 1%에 저항하는 99%'라는 구호와 함께 열린 반월가 여의도 집회에 참석한 한 대학생은 행사 시작 30분 만에 썰렁한 행사장을 털고 일어났다. 그는 "반금융자본 규탄대회라 했는데 연단에서 마이크를 잡는 사람마다 자기가 속한 단체의 불만을 털어놔 듣기 거북했다"고 안타까워했다.

지난 주말 '한국판 반월가 시위'는 말 그대로 '찻잔 속의 태풍'에 그쳤다. 참석 인원도 총 600여명(경찰 추산,주최 측 추산 1000명)에 불과했다. 수천명에서 수만명의 시위대들이 거리에 나섰던 미국과 유럽지역과는 판이했다.

전문가들은 명분이 약한 '수입집회'의 한계,진정성을 의심받는 좌파성향 시민단체들의 눈치보기,금융자본의 또다른 수혜자인 전국금융노련 등 핵심 단체의 무관심을 흥행 실패의 원인으로 꼽았다.

◆시위꾼도 지친 무개념 집회

지난 주말 집회의 성격은 명확했다. 반금융자본에 대한 반발이다. 1%의 월가 금융재벌의 독식으로 나머지 99%가 빈곤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다는 주장이 핵심이다. 하지만 한국의 반월가 집회는 잡탕식이었다.

행사 참석단체들의 면면도 그랬다. 여의도 집회에는 부산저축은행대책위원회 피해자들과 쌍용차해고자,KT정리해고 대책위,키코(KIKO)피해자 대책위 등이 참석했다. 키코 피해자를 제외하면 반월가 시위와는 다소 동떨어진 참석자들이었다. 더욱이 이날 집회 시작 40분 전에 '내돈 내놔라' 어깨띠를 두르고 나타난 부산저축은행 피해자들은 금융위원회 현관을 점거하고 농성까지 벌여 참석자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한 참가자는 "피해자이긴 하지만 자신의 돈을 찾아 달라고 생떼를 쓰는 것 같아 다소 불쾌했다"며 "집회의 성격은 안중에도 없이 자신들의 억지주장만 늘어놓는 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아쉬워했다.

서울역 집회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빈곤사회연대,민주노총,진보신당청소년위원회 등이 뒤섞였다. 150~200명이 모인 집회에서도 '홈리스의 안정적 노동권을 보장하라','정리해고 중단하라','물가폭등 못살겠다'는 등 집회 성격을 의심케 하는 구호가 난무했다.

◆과격단체 대거 불참

이번 시위가 일반 시민들의 호응을 얻지 못한 것은 인원 동원력이 뛰어난 조직화된 관련단체의 불참이 주요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선물시장 이관,낙하산 인사 등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각종 사안에 적극 개입해온 전국금융사무노련은 이날 행사장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민주노총 금융산업지부나 각 금융회사 노조들도 참석을 포기했다.

전문가들은 "반금융자본에 대한 성토의 장에 한국 금융산업의 한 축을 맡고 있는 자신들이 참석하는 것 자체에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이들 자신이 금융산업의 일부라는 인식을 가졌다면 집중성토 대상이 될 수 있는 집회 참석은 힘들었을 것"이라며 "금용노조원들의 급여나 복지가 다른 산업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아 오히려 시위 참가자들의 분노를 살 수 있다"고 말했다.

탄탄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각종 시위현장을 이끌어온 좌파성향의 민간단체들도 자제했다. 한 전문가는 "한진중공업 사태와 제주강정마을 점거 등을 돌며 조직적으로 개입했다가 언론의 뭇매를 맞은 세력들이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갔다"고 평가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전문시위꾼이라는 인상을 심어준 과격단체들이 이번 집회를 앞두고 내심 계산해본 결과 남는 장사가 아니라는 판단을 한 것 같다"며 "하지만 오는 주말인 22일로 예정된 비정규직 철폐 전국노동자대회 등 여론의 관심을 끌 만한 이슈가 있으면 언제든지 과격시위를 벌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심성미/김우섭/하헌형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