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시위가 전 세계를 뒤덮었다. 우파는 당혹감에 휩싸이고,좌파는 기대감에 들떠 있다. 하지만 문제의 원인과 해결 방법에 대해 누구 하나 명쾌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파울 놀테 독일 베를린자유대 역사문화학부 교수는 이런 문제의 본질을 파고드는 몇 안되는 석학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제발 솔직해지자"고 말한다. "늘어나는 실업자와 빈곤계층에 충분한 경제적 지원을 할 수 있는 복지국가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업에 대한 분배 요구도 한계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놀테 교수는 해법을 제시하기 위해 자본주의의 전통적 미덕으로 되돌아갈 것을 제안한다. 자신의 삶에 발생할 '리스크'를 국가 등 타인에게 전가하기보다 스스로 해결할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개인이 스스로의 능력을 키워가는 과정에서 국가는 이를 극대화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소외계층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중심으로 한 복지국가의 모델은 처음부터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음달 초 글로벌 인재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는 놀테 교수를 이메일로 미리 만났다.

▼이번 시위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국가 및 사회에 대한 기대와 현실의 불일치에서 나타난 것이다. 우선 기대를 놓고 보자.지금까지 젊은 세대는 항상 이전 세대보다 높은 경제적 풍요를 약속 받았다. 서구에서 전후 세대보다 베이비붐 세대가 높은 경제 수준을 나타냈던 것이 단적인 예다. 하지만 지금 젊은 세대에게 놓여진 현실은 다르다. 좋은 일자리는 갈수록 줄고,개인적으로도 빈곤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경쟁에서 낙오된 이들을 책임졌던 복지국가 모델도 높은 재정적자로 쇠퇴하고 있다. 최근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시위는 이런 현실에 대한 젊은 세대의 실망감을 반영한다. "

▼시위대가 주장하듯 금융 시스템을 개혁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나.

"젊은 세대가 왜 이전보다 낮은 소득을 얻는지 고민해야 한다. 근본적으로 국가경제의 쇠퇴가 국민 소득을 줄어들게 하고 있다. 유럽과 미국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시아 등 신흥국가들의 성장으로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최근 남유럽 재정위기로 증명됐듯 복지시스템을 통해 줄어드는 소득을 메우는 것은 한계가 있다. 치솟는 실업률과 생활고 속에서 월스트리트에 분노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금융시스템에 대한 반대와 개혁 시도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

▼그렇다면 해법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나.

"국가와 개인이 모두 소비 중심에서 투자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실업과 출산 등의 리스크를 국가가 떠안기보다는 개인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그 투자의 상당 부분이 교육 장려를 통한 인적자원 개발에 집중돼야 한다. 사회 리스크의 상당 부분은 취업활동 증가를 통해 해결되며,취업활동은 교육을 통한 취업능력 증진을 통해 활발해진다. 교육 수준이 높은 계층일수록 실업률은 낮아지고 소득 수준이 올라간다는 것은 사실이다. "

▼국가의 역할도 달라져야 할 것 같다.

"'복지국가'라는 개념이 재구성돼야 한다. 기업 경영서에나 나오는 '인적자원 개발'이라는 주제가 현대 국가의 사회정책에서 갈수록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단적인 사례다. 복지국가를 빈곤 · 소외 계층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것으로 한정해서는 안된다. 빈곤한 국민이 스스로의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게 능력을 개발하도록 하는 국가가 돼야 한다. 유럽과 아시아 등 고령화로 이민자 유입이 불가피한 국가에서는 더 큰 의미를 가질 것이다. "

▼재정위기로 국가의 역할은 갈수록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대체할 주체가 있을까.

"미래문제에 있어 '완벽한 해결책(grand solution)'은 없다. 각국의 정책 당국자들도,월가를 점령한 시위대도 가장 먼저 깨달아야 할 명제다. 국가의 역할 퇴조는 개인과 개인 네트워크에 대한 역할이 늘어나는 것으로 해결될 것이다. '친밀한 관계(intimate networks)'로서 가족과 친구의 가치가 높아질 것이다. 유럽과 미국에서 나타나는 경제적 빈곤의 원인은 상당 부분 '관계의 빈곤'에 기인하고 있다. 국가의 역할 감소로 개인이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 "

▼유럽 재정위기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가장 피해야 할 선택은 개별 국가가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 하는 것이다. 유럽 전체의 공조가 요구된다. 공공부채에 따른 문제인 만큼 고통스럽더라도 지속가능한 재정 모델을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스와 포르투갈 등 남유럽 국가들은 유럽연합(EU)에 가입하며 국민의 생활수준이 서유럽이나 북유럽 수준으로 높아질 것이라고 성급하게 약속했다. "

▼EU를 구원하는 과정에서 독일이 그에 따른 비용을 감내할지에 대한 의구심이 있다.

"독일은 EU 결성과 그에 따른 화폐 통합으로 많은 이익을 누려왔다. 지금 와서 독일이 이를 포기하는 것은 경제적 이득이 전혀 없다. 독일은 언제나 유럽 내에서 경제적 연대를 확대하기 위해 노력해 왔으며,앞으로도 이 같은 노력을 지속할 것으로 확신한다. 독일의 정치 지도자들은 EU를 구원하는 것이 독일에도 이로운 점이라는 것을 국민에게 설득해야 한다. "


◆ 파울 놀테는…'독일의 知性' 평가 역사학자, 투자적 사회복지국가 주창

파울 놀테는 '독일의 지성','독일을 대표하는 두뇌'로 불리는 세계적인 석학이다. 독일뿐 아니라 세계가 직면한 문제를 명쾌하게 분석,해결책을 제시해왔다. 앙겔라 메르켈 정부의 성장혁신위원회 자문역을 맡고 있다. 1963년 독일의 소도시 겔덴에서 출생했다.

2006년 출간한 저서 '위험사회와 새로운 자본주의'를 통해 자원을 낭비하는 '소비 국가'에서 자원을 기회에 투자하는 '생산적 국가'로 바꾸고, 개인이 자주적 삶을 살도록 교육에 집중해 '투자적 사회복지국가'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비서관을 포함한 전 직원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기도 했다. 뒤셀도르프대와 볼티모어대에서 역사학과 사회학을 전공했으며 하버드대 연구원을 지냈다. 2005년부터 베를린자유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글로벌 인재포럼 참석자들은 다음달 2일과 3일 놀테 교수를 만날 수 있다. 다음달 2일 글로벌 인재포럼의 특별세션Ⅳ(미래 자본주의와 상생:'상생의 교과서' 저자들로부터 배운다)에서 주제발표를 한다. 3일에는 '글로벌화 시대의 진로 지도 및 경력 개발'을 주제로 열리는 세션의 좌장을 맡아 토론을 이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