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한 내용 담은 법령 쏟아져…막대한 사회적 비용 국민이 부담
법령을 다루는 정부 부처나 지방자치단체의 공무원들조차 법이 헷갈려 아우성이다. 매년 쏟아져 나오는 법령이 모호한 내용을 담거나 구멍이 뚫려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에 따른 사회적 비용은 결국 국민에게 돌아온다.
◆"법제처가 법 해석해줘도 어려워"
10일 법제처에 따르면 정부 부처나 지자체 등이 법령 해석을 요청한 건수는 2007년 611건에서 2008년 651건,2009년 650건,2010년 712건으로 늘었다. 올해는 9월 말 현재에만 589건으로 집계됐다. 유권해석을 의뢰한 법령은 대천시 사례처럼 실제 개정의 필요성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법제처의 유권해석이 나와도 정부 부처에서 확신이 서지 않는 경우들도 있었다. 동국제강이 충남 당진 아산만의 공유수면을 메워 지난해 5월 준공한 철강공장이 그런 사례다. 전용부두와 배후부지 공사를 하나의 사업으로 봐야 한다는 동국제강과 각각 별개의 사업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국토부의 해석이 엇갈린다. 공유수면매립법에서 차이를 명확히 규정하고 있지 않아서다. 국토부 해석대로라면 동국제강은 공유수면 개발에 따른 이익 100억원을 국가에 납부해야 한다. 법제처는 최근 동국제강의 손을 들어줬지만 국토부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는 등의 이유로 동국제강에 "소송을 해서 법원의 판단을 구하라"고 종용하고 있다.
◆광복절 축사에 바뀌는 법령
부실 입법은 의원 입법의 급증과 무관치 않다. 의원 입법은 정부 입법과 달리 의회의 독립성을 위해 법제처 심사를 받지 않는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전체 입법 가운데 의원 입법은 14대 35.6%에서 18대에는 87.6%로 늘었다. 이순태 한국법제연구원 입법평가센터 센터장은 "국회의원들이 의정활동 실적을 내기 위해 법안 건수 늘리기에 나선 결과"라고 지적했다.
의원들이 법안을 제대로 심의하는지도 의문이다. 한 대형 로펌의 변호사는 "특정 법률과 관련해 문의할 게 있어 발의할 때 서명한 국회의원 중 한 명에게 전화했더니 '내가 거기 들어가 있나요?'라는 답변이 돌아오더라"고 전했다.
정부 부처도 부실 입법을 지적받기는 마찬가지다. 한 중앙 부처의 공무원은 "광복절 같은 때 대통령 축사가 나오면 일제히 연설에 맞춰 법을 바꾸기에 급하다"고 털어놨다. 정부 부처가 실제로 법안을 만들고서는 법제처 심사 등을 피하기 위해 의원에게 발의를 요청하는 '청부 입법'도 요인으로 꼽힌다. 법무법인 태평양의 김성호 미국 변호사는 "통과되는 입법 가운데 10% 정도는 청부 입법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백화점,대형마트,홈쇼핑 업계에서 "과도한 규제"라며 반발하고 있는 대규모유통업법 제정안이 대표적인 사례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