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르띠에 디자인에도 한국인 '숨결'
'판타스틱!(환상적이다)' 영국 런던 블룸스버리에 있는 세인트조지 교회 내부에 들어선 관광객들은 거대한 샹들리에와 천장을 둘러싼 우아한 간접 조명을 보고 감탄하곤 한다. 900년이 넘은 이 교회는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낡은 조명 때문에 애를 먹었던 곳이다. 이곳 조명을 다시 디자인한 건 우리나라 조명 디자이너 조민상 씨(38).조씨는 3년여의 준비와 치밀한 손 작업 끝에 완벽한 '작품'을 만들어내 찬사를 받았다.

그의 부인 김수미 씨(40)도 유럽에서 알아주는 보석 디자이너다. 프랑스에서 명품 브랜드 까르띠에의 '하이주얼리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그는 하나에 수천만원에서 수십억원을 호가하는 고급 보석을 디자인한다.

그가 디자인한 작품은 중동 국가의 왕실이나 안젤리나 졸리 등 할리우드 유명 연예인에게 보내진다. 이들 디자이너 부부는 지식경제부가 2004년부터 재능있는 글로벌 디자이너를 육성 · 지원하려는 목적으로 실시해온 '차세대 디자인 리더' 프로그램을 통해 해외 무대에 진출했다. 조씨는 "해외 전시,연수,워크숍 등 다양한 경험을 쌓고 글로벌 디자이너로서의 기반을 잘 닦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디자인 리더 '한국형 디자인' 알려

한국의 산업 디자인이 뒤처져 있음에도 잠재성은 크다는 평가를 받는 건 이같이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재능있는 디자이너들이 많은 덕분이다.

지난해 런던뮤지엄이 선정한 '2010 올해의 디자인상'에 오른 최민규 씨,미국의 유명 디자인업체 루나디자인의 컨셉트디자이너 성정기 씨,'아이팟'을 디자인한 업체 영국 탠저린디자인의 공동대표로 있는 이돈태 씨,독일의 디자인 서적 '디자인나우'가 세계 현대 디자인을 대표하는 90인의 디자이너로 소개한 김선태 씨 등 190여명의 '차세대 디자인 리더'들이 세계 각국에서 '디자인 한류'의 가능성을 밝히고 있다.

이들이 글로벌 무대에서 인정받는 것은 동양적 감각과 특유의 손재주 덕이다. 영국왕립예술학교 마일즈 패닝턴 교수는 "'동양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져 가고 있는 시점에서 한국 디자이너들이 한국적인 발상을 활용한 새로운 디자인으로 주목받고 있다"며 "정교한 손놀림 덕에 제품 완성도도 외국 디자이너들보다 훨씬 높다"고 평가했다.

최근 영국 런던에서 열린 디자인런던100%에서도 차세대 디자이너들과 국내 디자인 전문기업들이 모여 참가한 한국관이 전체 베스트 부스 상으로 선정받는 등 '한국 디자인'에 대한 희망의 불씨가 점차 커지고 있다는 평가다.

◆기업도 함께 뛰어야

앞으로 관건은 국내 업계가 얼마나 이런 인력을 잘 활용해 나가느냐다. 한국 디자인 산업이 이대로 정체하고 기업들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어렵게 양성한 인력은 대부분 해외로 유출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김현태 한국디자인진흥원장은 "창의적인 한국 디자이너들이 많은 만큼 'Designed in Korea'의 실현은 헛된 꿈이 아니다"며 "이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융합형 업무 환경과 그에 걸맞은 지원 방향을 기업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런던=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